나도 누구보다 독립하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본가로 내려갔다. 내려가 보니 아직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은 동생은 부산스럽고, 엄마는 일 때문에 매일 앓는 소리를 내고 아빠는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며칠 있다 보니 우리는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고시원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슬슬 생기기 시작한 때였다. 하지만 그건 나만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닌 듯했다. 내가 알바를 열심히 구하면서 저번에 시험기간에 미리 구해놓은 알바에 연락을 혹시 몰라서 해봤더니 출근 이틀 전에 연락을 하라던 분은 나에게 더 이상 자리가 없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그 황당함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알바자리를 찾아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앱으로 찾아도 전화를 반드시 해봐야 한다는 걸 깨달은 참이었다. 그런데 이미 채용이 다 끝난 공고들만 수두룩 했다. 허탈하게 여러 알바 앱들을 바라보다 이내가 사는 고시원 근처의 알바자리를 계속 찾으며 눈물이 차올랐다. 무조건 학교 근처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가족들이 나를 불편해한다. 가족들이 내가 가기를 바란다. 너무도 잘 느껴진다.
나도 그래서 무조건 고시원 근처의 알바를 구했어야 했다. 근데 경험이 없단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하고, 내가 가진 걸 봤더니, 공장 알바 이력들 뿐이었다. 생산직은 이미 다 마감되었고, 이전에 넣은 것들조차 떨어졌다. 그러다 결국 지역 범위를 넓혀서 본가 근처의 알바라도 구하기로 했다. 알바를 하면 본가 근처라도 일하는 시간이 생기면 가족들과 덜 부딪힐 수 있겠지. 엄마가 더 이상 밥값하라고 잠을 못 자는 이유가 일을 안 해서라고 등 잔소리를 하지 않겠지. 알바를 구하면 다시 고시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나 혼자 편하게 살 수 있겠지. 동생의 뼈아픈 말처럼 우리는 가끔 만나야 애틋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생기는 거겠지. 동생은 확실히 내가 가길 손꼽아 기다렸다고 말했다. 서로 성격이 정반대였던 건 알지만 자기도 사춘기라 감정소모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겠다고 한 뒤 나갔다. 엄마는 내가 알바를 구하느라 계속 집에 있자 그런 모습 때문에 동생이 나를 무시하고 깔보는 거라고 했다.
나는 정말 그런가 싶어서 대놓고 물어봤다. 동생이 정말 나를 그렇게 한심하게 보고 있는지 말이다. 동생은 그건 아니라고 했다. 상관없었다. 뭐가 됐든 우리 둘 사이에 엄마의 개입은 최악이 분명했다.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걸 알았기에 뭐라고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도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나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거나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현실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우연히 한 도넛 공장에서 이전 경력을 보고 해 보라고 이력서를 보내줬다. 그래서 성심성의껏 작성해서 보냈다. 물론 그 외에도 알바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지원하기 시작하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나도 눈치를 봤지만 가족들도 혹여나 내 눈치를 볼까 봐 나는 집에 있는 시간 자체가 숨이 막혔다. 그래서 계속 카페로 도서관으로 밖으로 나가 다니기 시작했다. 그걸 아빠는 좋게 보지 않았다. 돈이 들어간다는 거였다. 내 돈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조용히 전에 미리 사놨던 가족들의 생일 선물들과 정성껏 썼던 편지를 장롱 안에 넣어두고는 한숨을 쉬었다. 분명 그때 당시 고시원에서 편지를 적었을 때는 감사함으로 가득했다. 죄책감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떠나고 싶은 건 나였다.
내가 동생에게 왜 그렇게 내가 떠나길 바라냐는 질문을 했을 때도 그녀의 대답처럼 나는 이미 이유는 아는데 감정적으로 납득하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리고 아마 이건 내가 그럴 나이가 되어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2살, 내 나이대도 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너무 바빠서 그걸 마음 한편에 넣어둘 뿐, 미래에 대한 불안, 가족 간의 갈등, 독립에 대한 생각, 현실 등 다들 그런 것들에 치여 살아가겠지. 그래서 나는 겨우 이 정도로 힘들어할 수 없다. 그래서 난 밀려오는 감정을 막기 위해서 회피가 아닌 생존을 위한 도망을 시작했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아빠는 차라리 엄마 친구네 공장에 가서 일하는 건 어떻냐고 했다. 하지만 엄마 친구분과 그분의 남편분은 아빠와도 친구고 여러모로 나는 불편했다. 그들의 자녀들과도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고 그들과 계속 비교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아빠가 계속 얘기를 꺼내서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죽어도 거긴 싫었다.
거기가 노동 강도도 낮다고 말했지만 그래서 더 가기 싫었다. 강도가 높더라도 내가 직접 구하고 인맥으로는 가기 싫었다. 그러고 나서 구해지지 않으면 내가 아직 배가 불렀나 싶어서 괴로움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한숨에는 여러 약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과외는 무슨 과외... 구해지지도 않는데, 내가 너무 이상을 쫓아왔나 봐, 나 알바 경력 안 쌓고 그동안 너무 편하게 살았나... 등 온통 지금의 나에겐 필요 없는 생각들이었다. 그 때문에 불면증이 도졌고, 악순환이 재개되었다. 그래도 난 숨구멍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 자막을 수정하고, 유튜브 기획을 하고, 글을 쓰고 알바 연락을 기다렸다. 언젠가 이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고 바깥의 빛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이 행동들이 내게 계속 숨을 불어넣어 주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