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성장의 조화를 찾아서...
원장님께서 출장을 가시고 내가 금요일 수업을 맡게 되었다. 어학원 알바 보조 강사로서의 첫 수업이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을 안고서 그 전날, 밤을 새우고 말았다. 오만가지 걱정과 설렘과 기대가 뭉쳐져서 오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정을 얻고자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수업 준비는 이미 전에 다 해놨고, 초등학생 대상으로 회화 수업 한 시간과 문법 수업 한 시간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설렜고, 혹여나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불안으로 변해 괴로웠다. 학원에 도착하자, 실장님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고, 첫날이니 그냥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는 날이라고 생각하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처음 보는 아이들은 약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내가 상황 설명을 해주자 바로 수긍하고 각자 할 일을 찾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은 원래 집중시간 짧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랬고, 책에도 많이 나와있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잘하고 잘 따라와 줘서 놀랐다. 회화 1시간, 문법 1시간 각각 다른 반 아이들을 맡아서 진행했는데, 회화 반 아이들은 알아서 다 해버려서 내가 오히려 이것저것 물어봐야 했다. 실력은 다들 좋은데 주의 집중 시키기가 힘들었다. 뒤에 문법 반의 아이들은 숙제 검사를 해주고 한 명씩 제대로 채점했는지 봐준 뒤, 오답에 대한 설명을 한 명씩 해줘야 했는데 5명을 돌아가며 해주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페이지를 아이들에게 자꾸만 물어봤다. 그래도 한 명씩 정성껏 봐주고 나서 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점차 나는 마음속이 평안해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오히려 문법 판서 수업을 할 때 나 혼자 신이 나서 수업을 주도하며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며 아이들의 주의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전에 회화반에서는 각자가 해오는 걸 봐주기만 하는 형태여서 주의 집중을 모아주기가 힘들었는데 그때의 경험 덕에 이번에는 수업 전에 아이들의 이름을 한 번씩 다 부르고 주의가 산만해질 틈을 주지 않았다. 한 아이를 봐주고 있을 때는 다른 아이들에게 서로 써 온 것을 돌려보고 설명해 보라고 시켰고, 그게 10분도 채 가지 않았지만 시끄러워질 때마다 임무를 주었다. 다행히 집중하는 시간 단위는 짧아도 말을 잘 듣는 친구들이어서 시키는 건 하기는 했다. 그렇게 정신없는 숙제 검사가 끝나니 진도를 나갈 시간이 20분 밖에 안 남아있었다. 다행히 내가 빼야 했던 진도는 딱 2 바닥이었다. 숙제 검사는 to부정사에 관한 것, 그리고 진도는 접속사, and, but, or에 관한 것이었다. 전에 어떻게 설명할지 다 적어놔서 다행이었다. 나는 판서를 하며 아이들 이름을 겨우 떠올리며 참여시키려 노력했다. 놀랍게도 판서수업 때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다 집중을 길게 해 주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맘속에서 성공했다는 확신이 피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정신없이 끝난 수업 후, 집에 가려는데 실장님께서 내가 맡은 아이들은 가장 말을 잘 듣고 잘하는 반이라고 하셨다.
수업 난이도로 치면 下라고 하셔서 놀랐지만 그래도 나름 수월했던 것 같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버스를 타고 고시원으로 향했다. 막상 다 끝나고 나니 문법 수업은 만족스러웠는데 회화수업이 아쉬웠다. 첫날이고 내가 학원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숙지가 아직은 잘 안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전에 언급했듯이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 첫 수업부터 원장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처럼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또한 아이들이 첫날부터 얼굴도 잘 모르는 선생님의 수업에 집중을 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 그리고 혼란과 설렘, 또한 재미, 기쁨 등을 느꼈다. 다음 수업은 영어말하기 대회에 나가는 아이들을 처음 보는 선생님과 둘이서 함께 지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신이 생겼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보조교사가 되어 언젠가 진정한 선생님으로 거듭날 수 있겠다는 확신 말이다.
뽑혔다고 자만할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제부터 학원 행정의 가장 바닥에서 시작하는 선생님으로서 겸손함을 가지고 많은 걸 배워야 한다. 그건 선생님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서도 배울 게 많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함께 성장해 나갈 자신이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뽑힌 기쁨은 이 정도면 된다. 이제부터는 겸손히 차근차근 온 마음을 다해서 교육에 대해서 정직하게 배우자.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였으면 그 정도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라포는 연차가 쌓여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잘 지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거다. 사람은 각각 다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고 배워왔으니. 이 마음을 잊지 말자. 이 처음을... 실수도 많았고, 스스로에게서 희망도 본 이 첫 귀중한 경험을 지표로 삼아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를... 내가 바라던 일을 할 수 있는 첫 일터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