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과 공존하는 추억과 열정
두 번째 수업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첫 번째에는 어떤 분위기인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는 조금 더 배워오는 자리이다. 나는 그전에 아빠에게 첫 수업 일급을 다 드려서 삐지신 엄마께 두 번째 일급을 다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 수업이 끝나는 날 다음날은 엄마의 생신이었다. 이미 7,8,9월 나란히 생일이 있는 가족 구성원의 선물을 미리 사서 옷장 속에 넣어두어서 엄마께는 두 번째 일급과 함께 드릴 생각이다. 아빠의 월급날인 오늘, 우리 가족은 모두 고기를 먹으러 갔다. 엄마는 내게 술잔을 기울이며 슬픈 이야기 하나를 전해 주셨다. 아는 지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분은 18살 때 희귀병에 걸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26살이 된 지금까지 그는 간 가루형태의 음식만 먹을 수 있었고 그마저 위험성분이 있는 것이 있어 약을 몇 십 개씩 한 끼당 먹어야 했다. 엄마는 혈기 왕성한 사춘기 때부터 못 먹게 된 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하며, 나와 동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 너무 몸을 갈아 넣어 살지는 마." 엄마는 그러면서 우리가 모두 효자, 효녀라고 하셨다. 우리는 안타까운 그 이야기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나는 순간, 고기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보며 묘한 슬픔과 감사함을 느꼈다. 엄마는 다행이라는 표정과 안타깝다는 표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나는 몸을 갈아 넣어 살고 있는 사람으로 오빠와 같은 직장인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엄마, 아빠도 눈에 담겼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내 마음에는 아빠가 들고 나르는 만큼 무거운 철근이 들어 있었다. 도착하면 앓는 소리, 한숨 소리, 돈에 관한 소리, 이 세 가지가 내가 듣는 전부였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부모님의 청춘을 그렇게 먹으면서 우리는 자라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빨리 자립해서 부모님도 편하게 살게 해 드리고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싶었다. 그냥 빨리 그러고 싶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오래 꾸준히 붙어 있고 싶은 곳이 생겼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 생겼다.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추구하고 싶은 가치가 생겼고, 원장선생님이 내게 수업을 하나 내주실 때마다 나는 기뻤다. 처음에 느꼈던 긴장감과 불안보다는 설렘과 감사함이 넘쳤다. 애초에 무경력인 나 같은 대학생을 뽑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고, 내게 계속해서 수업을 맡기는 그 신뢰에 너무 감사했다. 처음 면접을 같이 보시고 지금 수업 진행에 도움을 주시는 실장님도 감사했다. 나는 받는 돈만큼 내게 찾아오는 성장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의 무게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건 감사함 덕분이었다. 이렇게 내가 타인에 대해 감사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 우리 부모님 덕분이다.
부모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말로도 행동으로도 몸소 보여준 덕분이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투자해 주시는 게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몸소 느끼게 된 건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좀 늦게 철이 든 것일 수도 있거나 그냥 앞만 보느라 잊고 살았던 게 분명하다. 그냥 우리만 바라봐도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엄마한테 받은 술잔이 무거웠고, 술이 썼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빠는 이제 슬슬 나를 경제적으로 더 독립시키기 위해서 알바를 하는 동안 카드 지출을 제한하셨고,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아직 그들에게 기대야 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천천히 나아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경제적 자립이자, 나의 성장의 새로운 발판인 어학원 보조 강사 자리는 내게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다. 두 번째 수업에 관한 내용을 전달받기 전에 미리 스스로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두 권의 책은 바로 '조이스박의 오이스터 영어 교육법', '바나나쌤의 한 달 완성 영문법'. 나는 최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회화와 문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이분들의 지식이 꼭 필요했다. 그중 바나나쌤은 교육에 있어서 나의 롤모델이었다. 물론 원장선생님도 포함되지만, 나는 그분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문법 강의를 한 바퀴 다 듣기 시작했다.
아는 내용이라도, 내용보다는 어떻게 설명하시는지에 집중했다. 아는 것하고 그 지식을 어떻게 전달하는지는 확연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건 지식과 정보 전달력 둘 다였기에 교육 전공자들의 노하우가 필요했고, 밑바닥에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술잔을 부딪히며 엄마한테 털어놓았다. "엄마, 내 나이는 뭔가 답답한 것 같아요. 22살인데 사회 초년생에 밑바닥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데 스스로 배워야 하고,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조심히 선택해야 하고, 뭔가 내가 하고 싶은데로 흘러가지 않고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한 나이...". 그러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엄마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마찬가지야. 내가 2년 차로 일하고 있는데 난 점점 더 힘들어져 가기만 하고 뭐가 뭔지 아직도 몰라. 엄마도 이 나이에 혼나면서 일해. 때론 숨어서 울기도 하고, 때론 힘입어서 서로 돕고 웃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어느새 경력직이 되어 있는 거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엄마처럼 그렇게 조금 더 숙련된 사람이 되려면, 상처가 아닌 배움으로 승화시키려면 남들이 다 거쳐간 그 시간을 감내해야 하겠거니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아무리 쓰고 힘들어도 삼키고 버텨야 할 때는 그래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경지에 도달할 때쯤 되었을 때가 되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엄마 아빠는 흰머리가 벌써 군데군데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조급해졌다. 내가 받은 만큼 나중에 보상해 줄 길이 없을까 봐. 부모님께 자유를 드리고 싶어서. 그게 자책으로 이어지면 모두 다 같이 수렁으로 들어가는 걸 알기에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내 인생은 지금까지 항상 감사함이 죄책감으로 변질된 채 어둠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온기와 빛을 그 사이에서 찾아낼 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죄책감이 감사함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알 게 된 때였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 무거운 철근은 덜어내고 나만의 구조물에 못을 박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좋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는 강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큰 신뢰와 안정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과거가 내 현재를 살아가는 동안의 지표가 되어 함께 옆에서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난 더 연구하기로 했다. 너무 긴 미래보다는 앞으로 10년 단위로, 더 작게 작게 쪼개서 당장의 오늘, 혹은 내일을 충실히 살아가고 그렇게 시간을 늘려가겠다고. 그게 내가 길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