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아픔을 행복으로 승화시킨 날
일하고 있는 어학원에서 멘토톡을 할 기회가 왔고, 나는 드디어 스무 살 때부터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내 삶에 대한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 중 '고등학생 때의 나를 위한 강연'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하나의 대본이자 에세이였던 글은 어느새 작은 꿈의 실현의 밑바탕이 되어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걸 처음으로 맛본 순간이었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내색하지 않는 깊은 내면 속 고민과 힘듦에 대해 조금이나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강연의 취지였다. 그리고 나의 첫 강연이었다. 영어 말하기 대회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내 진심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첫 강연. 나는 강연이 끝나고 나서 원장님과 실장님께 많은 칭찬을 받으며 딱 원했던 식의 강연을 해줘서 고맙다는 극찬을 받았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팠고 행복했던 나의 고교 시절이 이렇게 행복으로 승화되어 드디어 마무리지어지는 듯했다.
다시 고교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못하겠다고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슬퍼하고 힘들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벅차고 기대하고 행복했던 시절도 그때였다. 그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전학은 내 모든 것을 무너뜨렸고, 또한 전학을 간 후 좋은 담임 선생님들 덕에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외국어고등학교 1년 반, 일반고등학교 1년 반, 나의 3년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었다. 전학을 간 후에 항상 자책을 했다. 부모님께는 감사함을 가지는 게 아니라 죄책감부터 가지게 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에도 없는 부모님의 거친 말과 걱정들이 내 마음에 있는 그대로 꽂혔다. 첫 대학을 자퇴하고 반수를 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도포기는 내 발목과 마음을 모두 묶었다. 엄마는 지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처럼 또 포기했구나."
그 말만큼 아픈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가슴속에 큰 구멍을 가진 채로 살아갔다. 아빠는 더 힘들어하는 줄도 몰랐다. 내가 전학 가고 나서 아빠는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더 힘들어하셔서 나쁜 생각도 하셨다 했다. 그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나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 때마다 나를 일어서게 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첫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들과 추억들이었다. 매일 밤을 새우면서 힘들다고 불평하면서도 친구들과 과제를 하며, 발표 준비를 수시로 하며 나는 영어에 대한 자부심과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그게 가끔씩 떠오르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그만둔 게, 중도 포기한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서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중학생 친구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든 중도 포기는 지양하라고 했다. 그때의 힘듬으로 인해 도피하면, 나중에 커서 그게 두 배로 돌아온다고 했다. 현재 그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전학을 가지 않았다면 두 종류의 학교를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고 각각이 어떠한지 그 아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드디어 3학년 1반 교실 문 밖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 이상 그곳을 바라보고 서있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나아갔고, 이제야 비로소 내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 전학 경험이 있기에 나만이 해줄 수 있는 말들, 가만히 할 수 있는 강의를 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모님께 학부모의 입장에서 조언을 해달라고 했고, 외국어고등학교를 끝까지 졸업한 친구들과 다시 연락을 하고 결국 다시 친해지기까지 했다. 그 과정 모두가 나에게는 행복 그 자체였다. 각각 다른 길을 각자 가고 있는 친구들에게도 외고는 그들에게 소중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가 생각나면 한없이 그리운 마음에 애써 눈물을 참게 된다. 내게 있어 그 친구들은 정말 소중했기에 사진조차 한 장 지우지도 않았다. 물론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 부분도 솔직하게 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게 많았던 것도 사실이기에 있는 그대로의 얘기를 전하려 애썼다. 눈치 보지 않고 어떤지 얘기해 줬다. 그리고 진로에 너무 목매달며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성인인 나와 내 동기들, 친구들도 수십 번씩 고민을 한다. 편입을 할지, 전과를 할지, 휴학을 할지, 복수전공을 할지. 그러면서도 점점 더 모르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내가 강연을 하는 대상은 중학생이다. 진로로 인해 스트레스받기엔 너무 어리다. 대신 어떤 고등학교 생활을 하고 싶은지, 현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는 게 이득이라고 말해주었다. 내 강연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도 쉬고 눈물도 글썽이는 몇 아이들을 봤다. 내 중학생 때를 보는 것 같았다. 나도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강연이 많은 도움 혹은 울림을 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심지어 항공 쪽 특목고를 가려던 친구도 내 강연을 들었다. 강연 전, 나는 그 친구에게 면접과 관련된 팁을 주며, 아직은 부족해도 이 아이가 얼마나 진심인지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면접을 준비하는 어렸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나는 선배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서 못 할 것 같다고 인상을 찌푸리던 철부지였다. 하지만 결국 했고, 입학도 성공했다. 이 어학원의 강사가 된 게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인 것 같다. 내 강연이 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그리고, 입시에 지치지 않고 자기 꿈을 잘 펼쳐나갈 수 있기를. 그게 지금의 나를 살게 한 힘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