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
내가 가르치던 초등학생 친구들의 영어말하기 대회날이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까지 아이들의 모습을 내 폰에 담으며 열심히 촬영을 하고 피드백을 주었다. 3주밖에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난 연습으로 잘 읽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유창하게 감정을 실어 내용을 구사해내고 있었다. 그 내용과 모습에서 나는 초등학생 때의 나 자신을 보았다. 3주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아이들과 웃고 얘기를 하면서 동시에 연습까지 함께 해나갔다. 어떨 때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기도 했고, 애들의 실력이 늘지 않는 게 내 탓 같아서 조급함에 울기도 했다. 막막해서 나도 내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첫 술부터 배부를 수 없다며, 모두 다 처음은 있다며 아이들도 대회가 처음이지만 나도 교육 쪽 강사는 처음이란 걸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퇴근길에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 그리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사함에 울고 출근하고 나서는 아이들의 미소 한 번에, 걸어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다 나아졌다.
분명 알바로 시작했는데 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피드백을 학부모님께 보내면서부터는 책임감도 실감 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배우기 위해 열심히 메모하며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3주 안에 대본을 외우고 유창하게 감정도 싣게 할 수 있을지 연구도 해봤다. 보상 심리도 건드려보고, 교육법에 관한 책도 읽어봤고, 학부모님께 컴플레인을 받은 날에 펑펑 울고 다음 날에 원장실에 가서 직접 가르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희로애락을 다 담은 3주가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긴장을 활동적으로 웃으며 떠들며 풀어내는 애들을 보면서 나는 답답함 보다는 귀엽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제자 한 명이 같이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대본 뒤의 낙서에는 내가 주인공이었다. 나는 내 가족 이외에 내게 이런 식의 행복을 주는 존재들과는 처음이었다. 피드백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 어느새 질려서 내 눈치를 보면서도 작게 떠들어대는 아이들, 어느 순간 서로가 편해져 나한테 매달려서 자꾸 안 떨어지려 하는 애들, 하기 싫어서 나랑 거래를 하려는 애들, 자꾸 나를 부르며 찾는 애들,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내 반에 모였다.
귀여웠고, 잘 안 될 때마다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초보라서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그래도 매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 애들과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계속 칭찬과 격려만 해주는 건 좋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해야 하는 건 해야 한다고 알려줘야 했기에 때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이 되어 보려 노력했다. 잘 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아이들 대회를 맡아 지도하면서 느낀 점은 아이들은 집중 시간이 짧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미리 다 세팅해 줘야 바로 연습에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항상 30분 일찍 출근해서 모든 걸 세팅해 놓고 미리 온 아이들과 얘기하며 라포를 형성하고, 친해지려 많은 노력을 했다. 벌써 정이 들어서 헤어지기 싫었다.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초등학생 때가 생각난다.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느꼈던 점, 그리고 칭찬 하나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그리고 대회에 나가면서 얼마나 떨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성장하고 싶었다. 내가 연차가 빨리 쌓여서 뭔가를 더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조급함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너무 좋았고, 계속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고마웠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래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내 적성에 안 맞다고 느꼈다. 하지만 직접 가르쳐보니 내가 서툴 뿐, 내 적성에 오히려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힘을 주는 일,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원장님께 응원을 받으면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같이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눈이 뜨이기 시작하는 건 5년이 걸린다고 한다. 난 기꺼이 그 기간을 넘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각각 편지를 쓰고 간식을 넣어 진심을 전했다. 내 첫 제자가 되어주어 고맙고 열심히 연습해서 성장한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