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다

회복탄력성을 찾아서 꺼내다

by 칼미아

학점이 나오고 2025년이 막을 내렸다는 생각으로 무기력해서 고시원에만 박혀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나만 비슷한 고민들을 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온기를 다시 느꼈다. 그리고 본가에 내려가서 예상치 못하게 엄마가 나에게 다르게 느껴졌다. 원래라면 성격이 상극인 우리 둘은 서로 말하다 빈정 상하기 일쑤였는데 이번에는 엄마의 그 직설적인 말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진즉 아빠 카드를 반납하고 경제적 독립을 향해 노력했다면 엄마와의 관계도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내가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어서 그렇게 된 건지, 엄마가 나의 태도를 보고 누그러져서 나한테 좋게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엄마는 내 태도를 칭찬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내 모습이 대견하다고 했다. 나는 비로소 엄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맞다는 직감도 생겼다. 그래서 더욱이 일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힘들다고 털어놓으니 엄마는 원래라면 잔소리겠지만 이 날따라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는 언짢았지만 참고 들었다. 돌아가서 혼자 고시원에서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없었다. 하긴 엄마는 맞는 말만 하니까. 다만 나는 그걸 받아들일 능력이 여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사회생활도 해보고 인생이 어려워진다는 걸 깨닫고는 감사함이 생겼고 부모님이 하는 말들이 천금같이 귀해졌다. 내 인생목표는 항상 나이에 비해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 드라마를 볼 때도 나는 항상 주체적인 여자 주인공들을 좋아했다. 고장극이면 여걸이나 역사를 바꾸는 사람, 혹은 고난이 아무리 닥쳐도 결국에는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어마무시한 여자 주인공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하루하루 그냥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자는 없다는 걸 말이다. 동기, 원한, 수치심 이런 것들이 때론 연료가 되어 어마무시한 발전을 이룩해 내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을 때 그냥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렇게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 머리는 너무 복잡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넘치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동기나 원인이 없으면 시작이 늦었다.

다만 세상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니와 그냥 보통이고 무료한 하루가 인생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생이 항상 행복할 이유가 없다는 걸 되새긴 후, 그냥 그냥 노력하는 날들이 쌓여서 점이 되고 그 점들을 이어서 길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를 대기 시작하면 하다가 왜 하고 있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다시 흔들리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냥 습관처럼 하는 게 때로는 더 길게 가는 방법인 것이다. 인간이 365일 매일 동기부여를 하며 살아갈 순 없다. 그러기엔 우리 삶에 하기 싫지만 해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을 보며, 현재 나의 상황을 보며 하나하나 눈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비록 내 현재 상황이 좋지 않고 다 잃어서 일어나기 싫다 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나아갈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에 잡아먹히고 마는 그저 멈춘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2주 안에 회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학교 도서관에 와서 글을 쓰고 있다. 대학 4년에 걸쳐 쓰려던 소설도 서두가 써지기 시작했다. 행복중독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다시 감사를 느끼며 살아가기로 했다. 모든 경험은 배움이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이 모든 게 아닌 걸 알 나이도 됐다. 작년은 실패했다면 올해는 일과 학업 모두 잡는 밸런스를 꼭 성공시키고 말 것이다. 내 흐름대로 내 속도대로. 마지막으로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게 나의 최대 목표다. 마음이 안정되면 시체더미 속에서라도 다시 일어서 나아갈 수 있는 게 사람이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된 이 기분이 반갑다. 매번 새롭게 새로운 이유로 느끼게 되는 기분이지만 항상 반가운 회복의 기운은 나의 2026년을 밝혀줄 준비가 되었다. 이를 횃불 삼아 뚜벅뚜벅 걸어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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