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3학년 때 최종 진로를 바꿨기 때문에 생기부를 조금 뜯어고쳐야 했다. 그러면서 나의 생기부를 다시 훑어보게 되었다. 나는 뼛속까지 문과였다. 아직 수능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막게 하지도 않는다. 실기 준비를 하는 친구들은 3교시까지만 수업을 듣고 조퇴를 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내 친구도, 배우를 준비하는 친구도 다 이제 슬슬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고1 때 룸메이트와 본 적이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그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답답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친구들이 한창 방황하며 진로나 학업에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사는 동안 나는 엄청 걱정하며 달리려고 애쎴고,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하나둘씩 찾고 이제 실질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때가 왔는데 나는 그걸 바라보며 뭔가 경외감이 들었다.
물론 수시 원서도 다 썼고, 수능 준비는 딱 한 대학만 준비하면 되는데 나는 뭔가 더 하고 싶었다. 대학 준비 말고도 내가 내 꿈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계속 생각해봤다. 문예창작과를 준비하기 위한 학원은 거절당했지만 비교과로 넣었고 책도 꾸준히 읽고 있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 공허함은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계속 괴롭힌다. 19살 고3이 되면 모두가 밤새면서 공부나 실기나 코피 터져가며 준비하고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노력했던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면 다들 19세라고 대답하는 걸 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무언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확신은 굳건한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딱 하나의 상향 대학을 위해 최저 준비에 모든 기력을 쏟아붓는 게 답이 될 수도 있지만 뭔가 내 마음에 불을 지피지 않는다. 내년에는 성인이니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도 있다. 뭔가 더 변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오고 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꼭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미리 걱정하는 습관을 버리라고 했지만 내게 있어 미래는 내 전부다. 왜냐면 나는 현재에 잘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해 항상 마음이 앞서곤 한다. 아픔이 지나가면 싫어하면서도 또 다른 나를 성장시켜줄 고통을 찾는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잣대에 따라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항상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사회겠지.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조율을 해야 할 것이다.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참아야 할 것이고, 때로는 방황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공허함이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지 못해 답답하다. 왜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자꾸 들까. 뭔가 남에 비해 더 하지 못한 게 있는 것만 같다. 알아내고 싶다. 알아내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