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권선징악
심화의 부모님은 뒷수습에 나섰다. 그들은 의식을 되찾은 심화를 색현에게 맡겨두고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양국의 지도자를 각각 만나러 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평안 안국의 지도자는 눈살을 찌푸리다가 자현과 정화를 보더니 이내 눈빛이 바뀌었다. "아, 마침 잘 오셨네요. 한참 동안 찾았습니다만." 자현이 말했다. "오랜만인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을 몰랐네요." 지도자가 물었다. "이 전쟁을 막은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현이 대답했다. "평화로워져야 한다는 뜻이죠, 갈등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로 같이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지도자가 실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한결같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신 딸이 저렇게 나오지. 당신이 해 놓은 모든 것을 엎고 새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던데, 그것도 갈등이 있는 세상 말이야." 자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동안 다른 곳들을 다니면서 나도 딸아이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지. 그리고 그걸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도."
지도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변화를 주기 위해서 전쟁만큼 큰 갈등이 어딨다고." 자현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 자신만을 위한 전쟁이겠지. 보호국을 점령하고 나면 너는 아마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곳에도 눈을 돌리겠지. 과유불급이라고 갈등은 없어서도 안되고 너무 많아서도 안되니 그걸 조절하는 게 인간들이 할 일이야." 지도자가 말했다. "너무 늦었어. 이미 전쟁은 시작됐고, 나만 원하는 전쟁이 아니야. 같이 시작해놓고 사라지더니 이제 와서 내게 하는 말이 다시 바꿔야 한다고? 그래. 바꿔야 한다면 방식은 내가 정해. 당신은 인간이 아니지? 그러니 더 이상 인간들의 세상에 관여하지 말고 살아." 자현이 픽 웃더니 말했다. "내가 이 땅에 수만 년 동안 살면서 내 딸이 이곳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고, 내가 사회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을 텐데 굳이 당신 말을 들을 필요가 있을까? 사람을 잘못 봤어. 당신의 조상들을 보고 당신도 괜찮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사람은 그런 잣대로 애초에 판단을 하면 안 되는 거였어."
지도자가 말했다. "나는 네가 없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나라를 운영했어. 최대한 갈등을 없애고 평안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게 나야. 그런데 내게 주어지는 건 뭐지?" 자현이 말했다. "얼마 전, 보육원에서 독립을 해 대학을 다니다가 생활고로 자살한 학생이 있었지. 그런데 이에 대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했어. 갈등을 만들면 안 된다는 명분으로 당신이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야. 그들이 이 일에 대해 왈가 왈 부하면 소리 소문 없이 잡혀가 갈등의 주원인 제공자로 찍힐 걸 아니까. 이건 평화가 아니야, 독 재지." 지도자가 말했다.
"아니지, 자살한 그 학생이 문제지. 그 학생이 원인 제공자야, 우린 관점이 다르네." 자현이 말했다. "미친놈, 완전 정신줄을 놓았구나.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던 니 포부는? 나보고 도와달라고 한 것도 다 거짓이었구나. 사람들은 네가 하겠다던 그 복지 정책들을 믿고 너를 뽑은 거야, 그런데 복지는커녕 전쟁을 일으켜? 원인 제공자는 바로 너야. 하지만 그동안 나라를 운영했다는 점을 봐서 살려는 줄게. "
지도자가 소리쳤다. "나도 처음엔 이렇지 않았어!!" 자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누구나 초심을 잃을 수 있는 법이지. 하지만 너는 선을 넘었어.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 멈췄어야지. 초심을 찾으려고 노력이라고 했었어야지. 변화를 두려워한 건 다 너 자신을 위한 거였잖아. 애초에 지도자가 된 이유는 가문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였던 거고. 너의 심성을 이미 알아챈 네 부모님이 너를 막으려고 했기 때문이잖아.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야. 그들은 천국에 갔어. 다른 신들을 만나서 사실여부를 내가 확인했어. 이때까지의 정을 생각해서 죽이지 않을 테니까 가만히 있어. 도망치면 넌 죽는다." 자현은 지도자의 모든 감정을 거의 다 거둬들였다. 지도자는 정신을 잃더니 이내 좀비처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자현은 그런 지도자를 보며 말했다. "내가 정말 모든 걸 다 거둬들였다면 넌 죽었어 이미, 감정이 제로인 상태에서 야망과 집착없이 다시 시작해라.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