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존감을 위해서

삶에 대한 성찰

by 칼미아

오빠가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엄마는 그 얘기만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얘기하신다. 이 장면은 왠지 데자뷔 같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전과목 100점을 받아왔을 때, 엄마는 오빠와 내가 있는 앞에서 내가 올백받은 것보다 오빠 모의고사 점수가 오른 게 더 행복하다고, 대놓고 말해서 내가 충격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까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땐 어린 마음에 기분이 안 좋았을 것 같다.

오빠는 시험 점수 때문에 우는 나를 보고 한없이 나약해 보인다면서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남이랑 비교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은 비교대상만큼 할 자신이 없어서 비겁하게 변명하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망언을 퍼부었었다. 오빠는 내 자존감을 계속 밟는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오빠의 말이 맞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지금 기회가 있으니 성적을 잘 받아서 오빠를 눌러버리라는 사람도 있었다.


오빠는 전액 장학금을 타낸 그 자신감으로 내게 그런 말들을 했던 것일까. 내게 이런 말들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잔소리 차원에서 해준 말일까. 아무리 사회를 먼저 경험해본 오빠이지만 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꺾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부모님에게도 오빠에게도 동생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없다.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세상이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아직 얼마 살아보진 않았지만 입시를 통해 서서히 깨닫고 있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이때 쓰이는 것 같다. 모르면 도전에 있어 용감해진다. 그리고 그 첫 도전이 모든 것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모르고 그냥 부딪히고 싶다. 2학기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나는 재수를 할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내게 딱히 필요한 시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는 시험 불안증이 극도로 심하게 있다는 것을. 시험 때만 되면 월경주기와 겹쳐 미쳐버릴 노릇이고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때마다 자해를 했고, 어떨 때는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밥을 거의 먹지 않고 자해를 하면서 흐르는 내 피를 보면서 실성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 피로 종이에다 내 이름을 적고 태워버리거나 찢어서 없애버리고 이제까지의 나 자신은 죽은 거라고 스스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정말 정상적으로 다시 도전했다. 손목에 붙인 밴드는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시험 때가 되면 항상 습관이 된다. 이번에도 나도 모르게 해 버렸다. 아픔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뭔가 대가를 치르는 느낌으로 완결을 내는 느낌이다. 이 우울한 이야기의 완결을 책임져줄 행동을 찾다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끝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항상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시험 전에도 다시 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드는 죄책감은 내가 뭐가 힘들다고. 세상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내가 이럴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또다시 자조적으로 웃는다.


하지만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하필 그런 때 내 마음을 후벼 파는 말들을 쏟아붓는다. 내가 정말 약한 걸까. 그렇다면 나도 강해지고 싶다. 시험은 언제든 생기고 해 나가야 하는 관문이다. 그럴 때마다 이럴 순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 눈물이 나다가 더 이상 나지 않으면 그때서야 움직임이 시작된다. 결론은 똑같다. 나는 당장 사라질 수 없고 살아나가야만 하고, 이건 언젠가 사라질 감정이기 때문에 진정하면 된다는 거. 그걸 누가 모를까 싶지만 나는 그걸 시간이 좀 지난 다음 느끼곤 한다. 언젠가는 돌아보면서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이 되길 바라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건 누군가는 쉽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도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우선 스스로를 용서하는 단계를 밟고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각이 많을수록 어렵지만 결국 차근차근하게 돼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미래에 무너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미래를 맞닥뜨리고 그때 경험하고 싶다. 부모님은 나를 너무 살살 키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건 부모님의 잣대이다. 오빠와 비교하면 한 없이 할 말이 많으시겠지. 하지만 나는 오빠가 아니다. 나는 나다. 내 자존감을 다시 찾는 것도 나고, 오빠와 그 방법은 다르다. 오빠 말이 모두 맞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 말이 전부 옳은 것도 아니다. 이제는 내가 그걸 잘 캐치해서 들을 능력을 키울 차례다. 어떤 말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잘 가려듣는 것도 능력임을 안다. 애초의 상처의 크기를 비교의 대상으로 둔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좀 알 것 같다. 나는 나의 잣대대로 내 길을 갈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그게 정답인 것 같다. 계속 어떤 게 정답인지 모색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답은 내 소신대로 하는 것이었다. 결국엔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마음이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내 소신은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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