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기준을 나에게 두자

내 인생인데 내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by 칼미아

아픔의 크기도 잴 수 있을까. 어떤 영상에서 항상 자기 자신의 아픔의 수치는 100이라고 하는 심리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평소에 힘들다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거나 그런 티를 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듣던 말들은 "너만 그런 거 아닌데 왜 그래, 너보다 힘든 사람들은 그럼 죽어야겠네." 등이었다. 엄마는 한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죽고 싶어? 그럼 엄마는 이미 죽었어야 해. 힘들어서." 엄마의 아픔이 내 것보다 큰 것일까. 엄마는 자신의 일기장을 우리 삼 남매에게 읽어보라고 대놓고 보이는 곳에 꽂아두셨다. 보통 일기라면 꼭꼭 숨겨두고 감춰둘 텐데 엄마는 읽어도 된다고 하며, 읽고 자기 처지를 이해해달라는 투로 말씀하셨다. 엄마의 일기를 읽어봤었다. 온통 아픔과 극복, 슬픔으로 가득했다. 충동적이었고 기구했다. 다 보고 나서 내 일기에다가 그날의 심경을 적었다. '나는 아플 자격이 없다. 엄마만큼 힘들어보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그래도 죽고 싶다는 티를 내지 않고 살아왔으니까. 내가 죽고 싶다고 하는 것은 나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모욕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 자격이 없다.'


내가 본 드라마 중에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에서 여주인공 진강의 친구인 승아는 자신이 슬플 때마다 진강의 처지를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진강은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걸 떠올리며 엄마에게 과도한 감시를 받는 자신의 아픔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남자 주인공인 김무영은 드라마에서 진강보다 더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둘 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같지만, 진강은 자신을 돌봐준 오빠가 있었고, 무영은 그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동정'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안녕하세요'라는 영화에서 고등학생인 수미는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고 하다가 자신을 막은 어른에게 실망한다. 자신이 왜 아픈지만 알고 싶어 하고 얼마나 힘든지 해결해나가기 위한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한 자신을 구한 어른에게 어떤 것이 동정인지 말해준다. 우리가 공감이라고 생각한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동정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이다.


마찬가지다. 누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며, 만약, 그것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 별나게 구네. 이런 정신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우리 오빠가 그랬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그런 유리 멘털로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꺼냐고, 내가 죽고 싶을 정도면 자신들은 이미 지하세계에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나름 슬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웃으려고 했는데 내 감정을 내가 속이는 일은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아픔은 누구와 비교해서 크기를 가늠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인생이니까. 내 인생은 엄마 것도, 오빠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한때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끝내려고 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고, 이건 고등학생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들과 아픔인데 정말 별나게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나는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구나. 이 정도에도 이 만큼 아픈 거면.. 더 한 시련에는 나는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겠지. 죽을 자격도 없는 것 아는데, 뭔 상관이야. 죽으면 그런 죄책감 느낄 필요 없는데. 죽을 때조차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았던,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 눈치까지 봐야 하는 게 너무 한심해.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나만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한테 들켜서 엄마가 같이 죽자고 했다. 그리고 나를 정신병원 앞에 데려갔을 때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힘들어? 저기 어느 나라에 사는 애들을 봐, 그 말이 나오는지, 너는 부모한테 절하면서 살아야 해" "힘들어? 그럼 어떤 사람들은 벌써 다 죽었어야 되겠네." 왜 비교를 할까. 들으면 그 대상들은 동정이라고 생각하고 상처를 입을 말들이고, 힘들다고 한 사람들은 죄책감과 허무함을 느낄 말들이다.


나는 이에 대답한다. "몰라요, 그냥 내가 힘들어요. 누구보다 나은 환경에, 좋은 상황에 처했는지는 쥐뿔도 모르겠고, 난 이기적이라서 그냥 너무 힘들어요. 나는 지금 괴로움 수치가 100이에요. 참 죄송해요. 저보다 더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는지 참 궁금해요. 하지만 내 인생에서 나는 이게 최대 고비라고 느껴져요. 멘털이 약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힘든 걸 그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해서 나는 더 괜찮게 살고 있으니 힘들지 않은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는 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거라는 걸 알아요. 힘든 것까지 왜 타인이랑 비교해야 하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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