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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인도령 Jan 29. 2024

지금은 겨울방학중

퇴직 후 54일간 구직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상념들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창업을 준비하거나. 이직할 곳을 잘 찾아서 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많은 동료들이 왜 무엇이 급하다고 그만두려 하느냐? 고 뜯어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결단을 내려다. 


어쩌면 두 번째 직장에서 2년 9개월을 내가 얻은 건 '버티는 능력'이지 않았나 싶다. 버틴다는 것도 장점일까? 사실 그건 내가 돌이켜보면, '꾸준함'이라는 장점 때문인 거 같다. 


대표는 내게 실적을 만들기 위해 영업팀에 강한 리더십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사실, 이야기를 하는데 좀 더 강한 목소리로 군림하면 되는데.. 하지만, 변신이 안됐다. 지난 직장에서 '내가 20여 년간 살아남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협업. 즉 네트워크였다. 


물론, 영업에 있을 때는 열정을 다해 일을 했고 성과도 냈다. 그 뒤에 맡았던 신사업도 사실, 적임자로 들어간 것이고, 거기에서도 일을 만들지는 잘 못해도, 최초 사업을 구축하고, 그 사업을 안정화시키는데 그 역할은 줄곧 내 역할이었다. 




온라인 쇼핑 가구 MD 명성


. 아직도 내겐 가구 MD로서의 2년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2003년도 기준 년 매출 10억이 안된 것을 2년 만에 150억으로 만들어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온라인 가구가 불모지던 시절에 나는 성과도출을 위해 협력업체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기획전을 생산해 냈다. 그러면서 영업페이지에 내가 운영하는 상품과 기획전들이 곳곳에 보이도록 했다. 또한 서비스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배송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했고, 동업계 MD를 모아서 공장 방문을 기획했다. 업계규모가 있다 보니 온라인 쇼핑에서 가구 매출은 크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내가 온라인 가구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물론, 가구 MD가 될 수 있었던 건 가구를 판매했던 선배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잘살고 계신다)가 갑자기 그만두고, 당시 생활/주방 카테고리에서 더불어 살던 나를 잘 봤던 선배가 준 기회 덕분이었다. 


. 온라인 쇼핑몰 가구MD



침구MD로서 제 2전성기


. 나는 그 기회를 발판으로 방송침구 MD까지 맡게 되었다. 어쩌면 직장에서 가장 힘 있던 4년의 시간이었다. 홈쇼핑은 계속 성장구도였고, 협력업체는 계속해서 방송을 원했던 시절이었다. 특히나, 국내 침구에서 중국산 침구로 넘어가던 시절이었고, 2006년은 FW시즌에는 극세사 이불의 등장으로 홈쇼핑 침구는 전성시대에 내가 있었던 셈이 된다 


. 중국산 침구로 업체 두 군데에서만 300억 매출. 극세사 이불 9만 3천 세트 직매입 (기록) 등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을 거라 봤지만 매출이 눈이 어두워진 협력업체가 뒤통수를 치는 바람에 (당시 임원에게 유언비어를 쏟아내면서, 경쟁업체를 몰아내려고 했다) 2008년 12월 나의 침구 생활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 크게 느낀 건, '사람에 대해 너무 믿지 말라'였다. 한때 매출을 만들면서 호황기를 구사했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독이 되어 버렸으니 누굴 탓할 것도 아니고, 당시 임원도 처음 부장을 달았을 때는 추진력 있고, 힘이 돼주던 사람이었으나, 임원이 되고부터는 사람이 돌변해서 아무도 믿지 않고 오로지 독불장군처럼 굴면서 많은 직원들이 그만두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협력업체의 배신에 임원까지 미쳤으니 결과는 보직변경


. 진급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그 후유증은 남은 직장생활 내내 따라다녔다. 그래도 그렇게 사업부에서 나왔을 때. 한 임원이 나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온라인 생방송과 모바일커머스 담당을 맡겼다. 이 사업들은 2006-2007년도에 한창 잘될 거라도 주목을 끌었으나, 모바일 기술의 정체로 (아직 2G 폰) 사업의 존망이 위태롭던 영역이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남들은 안될 거라고 봤던 사업이기에 그것이 오히려 기회였었다. 다만 업무를 맡는 도중에 힘들었던 건 나를 내쫓은 임원이 다시금 내 위로 왔다는 것 빼곤 말이다. 


. 그때 다시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도 보러 다니고, '끝이구나!'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나를 내쳤던 임원이 업체에게 금품을 수수한 것이 문제가 돼서 결국 옷을 벗고 나간다. 그때는 정말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그 사람이 1-2달만 더 있었어도, 나는 직장 생활을 10년 일찍 그곳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 온 회사 대표가 온라인 생방송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담당자로 3년 2개월을 다양한 상품과 접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 방송침구MD




모바일 쇼핑몰 담당자


. 그러면서, 다시 한번 기회가 생기는데,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었다. 모바일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서 2009년 10월에 아이폰이 나오고, 갤럭시 폰이 나온 것이었다. 당시 발 빠르게 G마켓이 스마트폰에 모바일 쇼핑몰을 구축함으로써 비로소 모바일쇼핑의 진정한 시작이 된다. 당시 나는 2G 기반의 모바일 쇼핑 담당자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기반의 쇼핑몰 담당자로 근무하게 된다. 2010년 원년인데. 당시 2월인가 쇼핑몰이 만들고 (결제 X) , 4월에 결제가 되는 모바일 쇼핑몰을 담당하면서 회사에서 다시금 입지를 가져가게 된다. 


- 이때 모바일 쇼핑몰에서는 판촉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는데, (PC볻 저렴하게 해서 스위칭을 시키는 것이 화두였다) 당시 이익을 중시하던 사장은 '같은 상품을 모바일에서 싸게 팔면, 오히려 이익이 빠지는 거 아니냐?'면서 판촉을 확대하는 것을 심하게 반대해서 2년간을 유지만 시키다가, 다음으로 온 사장이 모바일을 적극 지원해 주면서 2013-2014년도에는 매출도 팀 규모도 커지는 성과를 만들었다. 


. 모바일 쇼핑 영업 및 마케팅 총괄




데이터방송(T커머스) 사업구축


- 그다음으로, 기존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데이터홈쇼핑 (녹화방송을 기반으로 하는 홈쇼핑) 신설팀에 투입돼서 처음 개국부터 함께 함으로써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A-Z다양한 경험을 이곳에서 하게 된다. 처음 2년은 영업과 운영 담당으로 방송 외에는 모든 걸 다 담당해야 했고, 이후 생활상품 파트장과 편성파트장과 대외업무 및 업무개선 담당으로 근무하면서 그곳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내고 회사를 나오게 된다. 


. 데이터방송 운영, MD 총괄 , 

. 데이터방송 생활상품 부문 파트장 

. 데이터방송 편성 파트장 

. 데이터방송 대외업무 및 업무개선




홈쇼핑 편성팀장


. 그리고 3-4개월 쉬다가 다시금 작은 홈쇼핑 편성팀장으로 2년 8개월을 보낸다. 이때는 부장과 팀장 그리고 대표직속이라는 환경에서, 비록 쉽지는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직원들을 잘 챙기고, 그 속에서도 '에너지, 소통, 긍정성'은 인정받으면서 잘 지냈으니까. 나름 지금까지의 직장생활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 내가 부족한 걸 가지고 후회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그동안 쌓은 장점을 가지고 앞으로 무어를 더하느냐? 가 더 중요하다고 보니까.... 


이렇게 돌아보니, 24년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거 같지만, 그럼에도 틈틈이 회사생활 중에 기록도 남기고, 관계도 잘해놔서, 아직도 이전 회사의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20여 년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지만, 마음 다치지 않고, 다시 좋은 직장이나 일을 얻어서, 내 장점이 십분 발휘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홈쇼핑 편성팀장




이제는 좀 더 다양한 경험이 빛이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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