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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좋은쌤 Sep 04. 2023

나만의 비밀번호

비밀이라기엔 너무 하찮은

나만의 비밀번호


         

나는 건망증이 심하다. 약속이나 계획등을 적어 놓지 않으면 곧잘 잊어버려서 미안한 일이 생길때가 많다. 홈페이지 회원등록을 할 때는 어떠랴. 아이디나 비밀번호는 거의 일괄적으로 같은걸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사이 자꾸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창이 떴다. 다음에, 다음에 변경하겠다고 하는 것도 반복되다보니 슬슬 불안함이 몰려왔다. 해킹이라도 당하면 어쩌지하는 마음에 새 비밀번호를 만들었다. 이제는 비밀번호 변경 창이 뜨면 당당하게 바꿀 새 번호가 생겼다. 비밀번호를 두개나 외운다는 쓸데없는 자신감은 외울 비밀번호를 또 하나 더 만들었다.

      

기존에 쓰던 비밀번호가 그대로 유지된 계정에서는 두 세 번 비밀번호 오류가 나기 십상이다. 뭐더라? 또 건망증이 발현된다. 어쩜 기억하는 게 너무 많으면 그 기억과 생각들이 얽히고 섥혀 헷갈림 또는 잊음 증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다시 리셋해야 한다. 나의 고유한 비밀번호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새로 판 비밀번호는 나날이 멀어지는 남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남편의 생일이 들어간 숫자로 만들었다. 나만의 비밀번호인데 왜 꼭 보란 듯 만든건지 나도 내맘을 알 수 없다. 결국 이 번호는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들의 학교를 들어가며 회원가입을 해야할 사항들이 생길 때 세 아이 모두 비밀번호는 똑같이 남편 생일이 들어간 비밀번호를 부여하게 되었으니.      





나만의 비밀번호 2     



무슨 일이 생기면 혼자 눈을 감고 수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50까지 셀 때도 있고 더 셀 때도 있다.

.

대 여섯살 쯤,      

천둥번개소리가 들린다. 지진이 나서 집이 흔들린다. 비바람이 세게 불어 나갈 수도 없다. 이불을 덮어쓰고 웅크리고 손을 모은다. 하나님 부처님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우리 집이 무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햇빛을 내려주세요.      


숨이 턱턱 막히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슬그머니 누나를 찾아 이불 속으로 들어온 동생을 꼭 끌어 안아준다.

이제 곧 지나갈거야. 자 눈을 감고 숫자를 세어보자.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수를 세다 보면 숫자가 헷갈린다. 똑똑한 동생이 누나 99다음은 100인데 누나는 101이라고 했어. 라고 지적한다. 이 자식이 아주 콩알만한게 누나를 가르친다. 그렇게 공포는 똑똑한 동생의 지적 능력에 비교를 당하며 스멀스멀 사라진다.     

 

어느덧 바깥은 조용해 졌다. 신기한 주문이다. 이렇게 숫자를 세면 나도 세상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해 진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여전히 냉기는 남아있지만 더 이상 큰 소리는 나지 않는다. 엄마 아빠는 왜 저렇게 무섭게 싸우는 걸까. 당시엔 천둥 번개 해일같은 부모님의 싸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보니 이해가 된다. 당신들의 삶 자체가 그런 재앙 속에 놓여있었다는 걸. 너무 힘들고 피할 수 없는데 탓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임을. 작고 연약한 아이들을 두고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행복따윈 사치였단 걸. 부모님의 싸움덕분이었을까, 동생과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산수를 곧잘 했다.  

        

엄마 무서워. 밤이 무서운 아이에게 가슴을 토닥이며 같이 숫자를 세어준다. 하나둘세엣.

나만의 비밀번호? 나만의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이 마법같은 세기 주문은 마흔을 넘긴 지금도 계속 된다.     


     





나만의 비밀번호3     


비밀스러운 숫자가 있다. 나의 신체 사이즈다. 나외엔 아무도 모르는 숫자들.

나는 어릴때부터 유독 키가 컸다. 친구들 보다 너무 큰 게 싫었던 나는 키도 좀 작게 보이려고 최대한 웅크리고 신발도 작은 걸로 신었다.      

대발이, 얼큰이, 전봇대, 키다리, 빼빼로

이런 종류의 별명은 너무 많다.      


그중 나의 최대 콤플렉스는 바로 신발사이즈다. 무지외반증이 있어 평소 사이즈보다 한치수 크게 신어야 하지만. 커도 너무 큰 나의 사이즈에 여성 신발은 무리다.

신발가게에 가서 운동화를 신어볼때조차 부끄러움에 목소리가 작아진다     

이백 육십오요...

네? 머라꼬요?

점원 아줌마가 귀가 먹었나

이백육십오 있어요? 나는 좀 더 크게 말한다.

누가 신을건데요? 아줌마가 더 큰 소리로 묻는다.

미쳤나 이 아즘마가. 짜증이 단단히 난 나는

우리 신랑요 라고 말하고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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