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잊고 살려고 발버둥 쳤던 시절이 있다. 아픔도 슬픔도 느끼고 싶지 않아 무작정 일을 했다. 8시에 회사를 마치고 새벽 1시까지 과외를 뛰었다. 과외가 없는 날은 사람을 만났다. 속을 다 꺼낼 필요 없는,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가족에게 느낀 아픔은 쉽사리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약해서라고 오히려 탓했다. 중학교 이후 가위를 심하게 눌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공간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가위에서 깨고 나면 허무하고 외로웠다. 가끔은 꿈과 현실이 헷갈리기도 했다. 마음의 불안을 극복하려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냥 내 마음을 외면하는 게 안전하다 여겼다.
고등학교 때 나는 자칭타칭 심리 상담가였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속얘기를 들으며 위로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돕고 싶었다. 내가 들어줌으로써 친구가 마음이 편해질 수 있게. 내가 그런 심정을 잘 아니까. 누군가 내 얘길 진심으로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같이 울어주면 좋겠어서.
시어머니와 아이들과 함께 신작 웡카를 보았다. 황홀한 색채와 음악에 반했다.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더욱 좋았다. 아이들은 예전에 보았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다시 보고 싶어 했다. 그 영화와 해리포터 시리즈를 구매해 집에 함께 보았다.
벽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은 더없이 경이롭다. "엄마 이 장면 정말 좋아해. 다시 돌려봐도 될까?"
벽을 통과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용기 있게 벽을 향해 전진할 것인지, 머뭇거리며 화를 내거나 슬퍼만 하고 있을 것인지는. 선택이다.
해리포터에서 도비로 인해 벽에 꽝 부딪칠 때, 론이 있었다.(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다) 해리가 역경을 이겨내고 해결할 때 옆엔 해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콜릿의 비밀은 초콜릿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웡카)
플랫폼 4호선과 5호선 사이의 벽*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난다. 벽이 아닌 문이 되는 세계에서.
어릴 적 상처를 소환하고 그때의 감정을 꺼내어 어루만지는 용기를 선택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래서 좋다. 내 영화는 투비 컨티뉴니까.
시댁과 친정에서 어른들의 한마디에 잠시 주춤하고 다시 취약해진 나에게 글쓰기란 명약을 스스로 잘 처방했다. 이제 평생친구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러 간다.
*4호선과 5호선 사이의 벽- 40대 중후반의 나이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