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어떻게 보든 나는 나야
나는 나서는 걸 무지 싫어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를 아는 대부분은 에이~설마 할것이다.
우리 엄마는 내 어릴적을 회상하시면 항상 웃으면서
"너는 참 용감하더라. 지각을 해도 느긋하고 당당하게 교문을 들어갔지. 그뿐아니다. 어릴때 너는 참 울지 않는 애였다."
좀 둔했던 것처럼 들린다. 내 기억과 다르다. 나는 민감하고 겁도 많았으며 긴장도 많이 탔던 아이였다. 엄마는 왜 나를 용감하게 생각했을까.
얼마전 고향에 놀러온 중학교 동창은
"너는 내 댄스선생님이야."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참이었을때 당시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그 노래와 댄스를 이 친구는 유달리 어려워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춤 연습을 했을 뿐이다. 이 친구는 박치가 심했다. 그러니 나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낼 수 밖에. 나는 완전 뻣뻣함의 대명사였지만 이 친구에겐 내가 서태지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 친구의 기억도 내 기억과 다르다.
고등학교 동창들 모임에서는 더 가관이다.
어쩌다 고1때 반장을 했고 어쩌다 웃긴 아이가 되어 있었다. 키가 크고 커트여서 어쩌다 보니 후배들에게 선물과 편지를 받기도 했다.
"너가 반장이면서 제일 시끄러웠던거 알아?"
"너 밤샘공부하고 매일 학교에서 잤잖아."
완전 오해였다. 대학 졸업하고 여전히 고향에 살고 있는 나를 보았을때야 오해를 푼 친구들이 많다.
"너 서울 간줄알았어."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내 여성성을 몰라준다. 놀라울 정도다. 고등학교때 사춘기가 늦게 와서 죽을 고비까지 넘겼는데 학교에서 밝고 명랑했다고 하니.
내 기억과 다르다.
어쩌다 보니 우리 아들 초등학교의 운영위원장이 되었다. 아이를 위해 학교 운영에 대해 좀 더 알고 동참하고 싶어졌다. 정치와 경제 문외한인 엄마지만 지금부터라도 작은 사회의 운영에라도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년 연말 급 정치에 관심이 생기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현재 정치를 이끌어 가는 어른들을 닮아가면 안될텐데 하는 걱정이 컸다. 우리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좌우할 학교에 대해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졌달까. 그런 마음으로 살짜기 문을 두드렸을 뿐인데.
감투를 쓸 위인은 절대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나서는 거 정말 싫어라하는데.
어쩌다 보니 운영위원장이 되어있었다. 투표라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런데 기가 막힌건 나는 정말 부담되어 하기 싫다고 거절의사 까지 밝혔음에도 다른 학부모와 교사들 눈에는 그저 맡겨주면 잘하겠다라는 의사로 느껴졌단다. "저는 전혀 할 능력이 없습니다." 라고 까지 표현했는데. 이들과 내 기억엔 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도대체 왜? 이제 강력하게 거절하는 표현을 연습이라도 해야하는 걸까!
여튼 운영위원장이라고 뭐 크게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신경 쓰이는 일들이 있긴 하다. 또 은근 위원장들의 모임에서 정치싸움?을 보니 심란하기 그지 없다.
나는 초중고 삼남매의 엄마다. 딸 둘 연년생에 막내 아들까지 얻었다. 언제적 시댁살이인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지금은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결혼 후 얼마나 상처투성이였는지 모른다. 그 일들이 다 없던 일들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10년전과 지금은 같은 상황으 두고도 기억이 다르다. 나는 성장했고 내 주변도 덩달아 더 좋아졌다.
나는 항상 흐르고 가득 채워진다. 그렇기에 같은 상황에 대해 자꾸 자꾸 기억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더 소심하고 더 연약했던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 주변은 여전히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들로 가득할테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이 연약했던 과거의 나를 있는 그대로 한껏 안아주고 있으니까. 앞으로 또 아픈 일들이 생겨도 그 아픈 일이 언젠가 또 좋았던 일이 될 걸 아니까.
기억이 좀 달라지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