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러너의 첫 마라톤
오늘은 화이트데이다.
연애할 때도 기념일 챙기는 걸 싫어하던 내가, 학원 운영할 땐 기똥차게 기념일이란 기념일은 다 챙기며 아이들을 만족시키려 노력했다. 열심히 일했던 지난날을 보상이라도 하듯 오늘은 나를 위한 화이트 데이. 밝은 기운을 몽땅 끌어 당긴 하루,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진 오늘이다!
창녕 부곡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첫 마라톤이니 러닝에 욕심내지 말고
빠르게 걷기 운동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사람들이 우르르 뛰기 시작하니
나도 모르게 덩달아 뛰고 있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옆에서 같이 뛰는 딸은 어찌나 가볍게 뛰는지.
딸에게 맞추려니 숨이 찼다.
"먼저가"
"엄마랑 같이 뛰고 싶어."
"너랑 같이 뛰면 나도 모르게 빨리 뛰게 되서 호흡이 힘들어."
"그래도 같이 뛰는게 의미가 있지. 내가 좀더 천천히 뛸게."
"아니야. 부탁이야. 먼저가. 그게 도와주는 거야."
딸을 먼저 보내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가벼웠다.
호흡이 진정시키며 잠시 걸었다.
사람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걸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추월당하다니.
나도 어서 뛰어야하나싶었다.
그러다 문득 멈칫했다.
추월당하고, 추월하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
내 속도대로 한 번 가보자.
대신 목표를 하나 정했다.
'뛰기를 멈추지 않기'
그렇게 4키로를 묵묵히 뛰었다.
유모차를 밀며 천천히 뛰는 아저씨,
웃음기 가득 장난치며 달려가는 아이들,
연세 있어 보이는 분들이
내 옆을 지나갔다.
내가 끝까지 뛸 수 있을까? 라는 의심보다
어떻게 하면 천천히 끝까지 뛸 수 있을까. 페이스 조절하자. 라는 생각만 했다.
멈추지 말자. 멈추면 방전된다.
방전되었던 수많은 지난날이 떠올랐다.
어쩌면 지금도 내가 멈추고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시작하고 멈추고 다시 시작을 반복하는 것들..
멈추지 않겠다는 나의 도전은
다른 사람들의 속도나 결과에 견줄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나와의 싸움을 하는 거다.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에 휩쓸리면
나는 결국 멈추게 될거다.
도착점까지 800미터가 남은 시점부터 엄청난 속도로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또 유혹이 찾아 왔다.
'이젠 속도를 내야 할 때야. 다들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잖아'
'아니야, 욕심내지말자, 내 목표는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거야.'
피니쉬라인에 가까워지자 관중들의 함성이 들렸다.
기계적인 페이스로 뛰던 다리는 결승점을 통과하고도 백미터를 더 달리고 제동이 걸렸다.
이게 뭐라고.
그런데 벅찼다.
초콜렛보다 더 달콤한 도전의 기쁨을 나 자신에게 선물한 날.
잊지못할 화이트 데이다.
누군가가 나를 앞지를 때
누군가와 나란히 갈 때
호흡을 유지하며 묵묵히
내 속도대로 뛰어 갈 때
참 자랑스럽다
내가 나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