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만한 아들은 정말 없는 것인가?
나는 엄마에게 딸 같은 아들이고 싶었고 그렇다고 생각을 해왔다.
헤어져 지내던 긴 시간을 허물기 위해 엄마와 나 서로가 보이지 않게 노력 해왔다.
나름대로 연락도 자주 한다고 생각 했고 엄마의 얘기도 잘 들어준다고 생각 했다.
하지만 엄마를 향한 나의 모든 생각이 한순간에 바뀌게 된 계기는 나의 여자친구 때문이다.
우리가 사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친구가 부모님과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30분 넘게...심지어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알맹이 있는 얘기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냥 가족끼리 하루 일상 얘기 하고 하소연 하고 가끔 어떤 대상을 목표로 삼고 모녀가 흉을 보기도 한다.
엥???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얘기로 어떻게 그렇게 긴 시간을 통화를 하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자친구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았다.
우리 엄마도 여자 친구나 그녀의 엄마처럼 할말이 많을까? 많지만 아들이어서 참았던 것인가?
아니면 우리 엄마는 애초에 말이 없는 것일지도?
22년 12월 30일 여자친구를 엄마에게 소개 시켰다. 처음엔 당연하게도 서먹서먹하게 식사를 하다가 어느샌가 둘의 대화에 내가 낄 자리가 없었다.
아.... 이게 여자들의 대화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론 우리 엄마가 말이 없는 여자가 아니었구나 싶기도 했다.
하루는 두 여인을 모시고 오이도에 있는 조개 구이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조개 굽는 중대한 임무였다. 그 곳에서 한시간 반가량....카페로 자리를 옮겨 두 시간 반가량 ㅋㅋㅋ
장장 네 시간 되는 시간을 둘은 엄마와 딸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아들이 아무리 딸처럼 노력해도 결국 여자를 대신 할수는 없다는 걸 이때서야 깨달았던 것 같다.
아들의 여자친구와 이토록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에게도 고맙고 존경스럽고, 남자친구의 부모님과 오랜 시간 웃으며 들어주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여자친구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딸이 아들을 대신 할수는 있어도 아들이 딸을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