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진 우산

2021. 12. 02.

by midsunset


어제는 제주에 비와 우박,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우산이 뒤집히는 일이 예사인만큼 제주의 바람은 강한 편이라 비가 와도 우산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일 년이 조금 넘게 살아보며 알게 됐다.


아이 하교를 기다리며 우산을 들고 서 있는데, 바람의 방향에 조금만 우산을 잘 등지면 우산이 뒤집히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버티고 있었다. 아이가 나오고 함께 걸어가는 길에, 작지 않은 나의 몸마저 날려버릴 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요리조리 기술을 발휘하여 우산을 꽉 붙들고 있다가 우산이 뒤집히고 어쩔 줄 모르던 상황에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우산이 철로 된 살만 남기고 홀라당 벗겨져서 멀리 날아갔다.


학교 앞에는 아직도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들과 방금 나온 아이들로 북적거렸는데 그 어딘가의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 쳐진 나의 우산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바람을 타고 멀어져 갔다.


아이와 헐레벌떡 달려서 차를 타고 그 자리로 돌아가 교통지도를 하고 계시던 아저씨께 물었다.


“아까 제 우산이 이쪽으로 날아갔는데, 혹시 다치거나 부딪힌 차량이 있었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희가 잘 치웠어요. 제주 바람이 참 세죠?”


아저씨의 대답에 아까부터 꽁꽁 얼어있고 걱정됐던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얼마나 다행인가, 고의는 아니었건만, 누군가 다치거나 했다면 참 난처했을 터라 나름 어깨가 뭉치도록 긴장을 했었다.


집에 돌아와 트렁크에 놓인 뼈대만 남은 우산을 보고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나도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자, 만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일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났다.


예측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준비가 늘 필요하다고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예측할 수는 있으나 그 수위를 알 수 없어 버텨보고자 했던 나에게 닥친 오늘의 상황이 미묘한 깨달음을 남겼다.


우산을 접지 않고 버티는 동안 적어도 비는 덜 맞았고, 날아간 우산에 큰 비극이 생기지도 않았다.


위기의 상황에서 늘 조심해야 하지만, 생각보다 감당 가능한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을 알 수 없어 어려운 것이겠지만.


아침부터 ‘뒤집어지지 않는 우산’, ‘바람에 강한 우산’ 등을 검색하고 있는 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냄새가 아이에게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