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일기장을 훔쳤을까

2021. 12. 06.

by midsunset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였던 나의 담임 선생님은 내 인생의 멘토이자,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어른이자,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였다.


내가 가끔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담임 선생님은 어쩌다가 우연한 계기로 나의 일기장에 간간히 코멘트를 남기게 되었다. 다정한 친구와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재미에 나는 일기를 열심히 썼고, 나의 속마음을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든든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른 아침에 교무실에 들어가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캔커피 하나와 일기장을 내려놓는 일이 그 시절 내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다. 오후 자율학습 시간이나 청소시간에 간간히 선생님이 일기장을 건네주면 대상 수상자가 적힌 카드를 열어보듯 아끼고 아껴 한참 후에 집에 돌아와서야 선생님의 코멘트를 읽곤 했다.


코멘트라고 딱히 유별날 것은 없었다.


‘괜찮아질 거야, 마음이 아팠겠다. 힘 내.’


‘선생님도 그런 적 있어.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


‘축하해. 너무 멋지다.’


마음이 들풀처럼 흔들리던 사춘기에 선생님의 짤막한 글은 용기가 되고, 희망이 되어 나를 다독이고 안아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물함 정리를 하다가 위에 올려두고 깜박 챙기지 못한 일기장이 사라졌다. 분명 아침에 챙겨 온 것을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일기장이 보이질 않았다.


하루 종일 일기장을 찾다가 청소시간에 친구가 와서 화장실에서 일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일기장은 안 쓰는 화장실 안 쪽 변기 속에 둥둥 떠 있었다. 글씨가 물에 젖어 흐물거린 채로.


며칠이 지나도록 잠자는 시간 빼고는 온종일 울었다. 범인은 지금까지도 누구인지 찾지 못했다. 특별한 것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지 못한 어느 틈에 누군가의 질투나 화를 산 모양이라고 짐작만 할 뿐.


좋은 기억만 남아있기에는 너무 아픈 추억이라 가끔은 불쑥 떠올라 여전히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으면서도 누군가의 미움을 산 경험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기억하길, 내게 좋은 선생님이 있었노라고, 그때의 나를 포근히 품어 준 따뜻한 마음과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던 사람이 내 곁에 있었노라고, 그렇게 아픈 기억을 다독여본다.


오늘은 왠지 그리운 선생님이 아침부터 떠올라서 써 보는 글. 잘 지내시려나.


고마웠어요. 선생님.

그것만 기억하고 싶은데, 여전히 가끔은 속상해요.

하지만 정말 그때의 나를 잘 버티게 해 줘서 고마웠어요.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 일기장은 누가 훔쳤을까요. 이제 궁금하지 않을만도 한데 가끔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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