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07.
그날의 아침은 차갑고 설레고, 분주했다.
처음으로 해외 연수를 떠나던 날, 인터넷 면세점을 뒤적거리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머리는 상쾌하고 맑았다.
연두색 캐리어에 짐을 꾹꾹 눌러 챙겼다. 한 겨울에 여름 나라로 떠나니 짐이 별로 없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챙길 것이 많았다. 가끔 멈춰서 막막하게 하지만 꼭 필요할 것 같던 노트북, 한식이 생각날 때 꺼내먹을 컵라면, 언제 신을지 모를 하이힐, 작은 우산…….
새벽 시간, 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에는 승객들이 꽤 많았다. 고작 두 번째 해외여행이라 잔뜩 긴장하고 들뜬 나에 비해, 능숙하게 비행기를 탈 것 같은 중년의 남녀 성인들과 승무원들이 왠지 모르게 멋있고 폼이 나 보였다.
넓고 커다란 공항 한복판에 함께 떠나는 연수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저마다의 들뜬 표정으로 챙겨 온 간식을 앉아서 나눠먹거나 면세점을 두리번거리다 탑승을 시작했다. 잠도 자지 않을 거면서 괜히 수면 안대를 꺼내 써 보거나, 면세 물품 쇼핑 책자를 뒤적거리고, 자막이 없어 제대로 이해되지도 않는 영화를 재생시켰다.
그냥 다 너무 좋아서, 입술을 꽉 깨물어 베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별 맛없는 기내식은 어찌나 그리 맛있던지, 공짜 와인과 맥주는 또 얼마나 신나던지, 얼굴만 조금 아는 타 과 아이들의 인사와 농담은 어찌나 재밌던지,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멜버른 공항은 덥고 끈적하고,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마저 모두 반갑게 느낄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리카락의 색과 눈동자 색, 피부색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낯선 말소리, 영어로 된 이정표들, 어딘지 모르게 달라 보이는 신호등과 도로들.
내가 전혀 낯선 곳에, 평생 발을 딛고 살아온 곳에서 거의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숨을 쉬고 있었다. 어떤 새로운 일들과 사람들을 만날지 하나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얇은 카디건 마저 땀이 흥건하게 젖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카디건을 허리에 묶고 면세점에서 산 선그라스를 꺼내어 꼈다. 내 손에 이끌려가는 크고 꽉 찬 캐리어, 공항 앞에 기다리고 있던 이국적인 느낌의 연수팀 수송 버스, 현지에서 안내를 담당하는 대학교의 직원, 아직도 생생하게 그 낯선 것들이 이십 대의 나를, 분주한 변화를 겨우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지내던 조금 지루했던 내 인생 속으로, 소용돌이처럼 마구 비집고 들어오던 장면이 생생하다.
나의 호주.
딱 이 맘 때쯤이었다.
벌써 겨울인가 싶다가 차가운 바람이 익숙해져 완연한 겨울로 변해가던 12월의 어느 날, 그곳으로 떠났다.
거기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마음에 담고 지금의 나를 만든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이가 탁상 달력에 있는 해외 대학교의 사진을 보고 본인도 그곳에 가서 공부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나는 가슴이 뛴다.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정말 가고 싶니?
물으면서, 내가 더 설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담담하게 일상처럼 지내는 척했는데, 구름 위를 나는 것처럼 지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느낀다.
당장 떠나고 싶냐 물으면 그건 아니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달라서 순전히 날 것으로, 둥실둥실 떠 다니는 구름 마냥 모든 것을 설레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테니.
그때의 젊음과 그때의 순수함과 그때의 떨리는 기분을 다시 느낄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중한 나의 지난 시간.
떠날 수 있어, 그곳에서 지낼 수 있어 진심으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