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정말 대단해

2021. 12. 08.

by midsunset


주말에 큰 아이의 피아노 콩쿨이 있었다.

일곱 살 여름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침 시간이나 운전할 때 피아노 연주곡을 많이 듣는 편인데, 어느 날 아이가 일본 음악가인 ‘히사이시 조’의 ‘summer’ 연주를 한참 반복해서 들려달라고 하더니, 본인도 그런 곡을 직접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그 무렵에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자신의 연주를 뽐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진도에 비해 연주가 어려울 것 같아 걱정하던 중, 학원 선생님께서 피아노 초보 연주자가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보를 구해주셨다.


아이는 밤이고 낮이고, 집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에 앉아 온종일 악보를 뚫어지게 보며 연습을 했다. 될까 싶었는데 어느 날 내게 헤드셋을 건네며 자신의 연주를 들어달라고 했다.


뚱뚱뚱뚱 뚱뚱뚱뚱 ~


아이의 작은 손이 ‘summer’를 연주하고 있었다. 쉽게 편곡된 것이라 해도 아이의 연주는 꽤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놀라며 칭찬하는 나를 아이가 세상 뿌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이의 눈이 반짝거리고 순간 키가 훌쩍 큰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 아이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매일 깜짝 놀라도록 향상되어 갔다. 어느 날은 이루마의 곡을, 어느 날은 김광민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곤 했다.


학원 입구에 걸려있는 콩쿨 수상자 명단을 보고 왔는지, 자신도 콩쿨에 나가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위해 선생님께 참가 가능 여부를 여쭤보았다.


그렇게 아이는 올해 봄, 처음으로 피아노 콩쿨에 나가게 됐다. 별로 긴장되지는 않지만 귓가에서 북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통통하고 짧은 손으로 연습했던 곡을 틈만 나면 흥얼거렸다.


콩쿨 당일,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해 참가자와 보호자 한 명만 연주장에 들어갈 수 있어서 아빠와 함께 아이를 보내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아이 아빠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씩씩하게 무대 위로 걸어 나간 나의 아이가 연주를 하고 있는 영상, 작은 실수들이 있었지만 묵묵히 연주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연주를 하고 있는 작은 남자아이가 거기 있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마구 흘렀다. 기특하고 장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아이가 그동안 한 발 한 발, 디뎌낸 도전들과 노력들이 고맙고 감동스러웠다. 실수를 해서 아쉽다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너무 자랑스럽고 잘했다고, 너무 고맙다고 토닥이며 또 한 번 눈시울을 적셨다. 우는 엄마를 보고 놀란 아이가 왜 우냐고 묻자, 고맙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고, 사람들은 너무 기쁠 때도 눈물이 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지난 주말의 두 번째 콩쿨이 열렸다.


아이는 한결 여유로웠고, 나는 여전히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지난번에는 보지 못했던 아이의 연주를 이번에는 직접 볼 수 있었다. 아이의 연주 순서보다 앞인 아이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드디어 내 아이가 연주할 차례, 성큼성큼 걸어가 피아노 앞에 앉은 아이는 또 묵묵히 작은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연주를 마쳤다. 대기실에서 긴장이 조금 됐었노라고, 연주를 마치고 나온 아이가 말했다. 품에 안긴 아이의 몸이 차가워서 한참을 안고 너무 잘했어, 정말 멋있다, 칭찬을 해 주었다.


두 번의 콩쿨에서 아이는 꽤 좋은 상을 받았다. 첫 번째 콩쿨에서 받은 수상패를 책상에 세워두고 집에 손님이 오면 꼭 보여주곤 하는 아이가 조금 웃기면서도 귀엽고 자랑스러웠다. 이제 그 옆에 또 하나의 수상패가 생기면 아이는 또 즐거운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자랑을 할 테지.


나의 작은 아이, 내 품에 안겨야만 울음을 멈추던 그 작고 약한 생명체가 걸음을 걷고 스스로 밥을 먹고 학교를 간다는 것도 신기한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무대에 올라 음악을 연주하다니, 아이가 커가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오늘 아침, ‘히사이시 조’의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집에 틀어놓았다. 이런 음악을 언젠가는 자기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하며 출력해 둔 악보를 빤히 쳐다보던 아이를 보니 또 머릿속으로 살랑이는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얼마 후엔 아이가 그려놓은 음표들을 두근거려하며 보고 있었다는 일기를 적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멋지고 예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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