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인정 사이

2021. 12. 13.

by midsunset


어제 브런치를 둘러보다가 꽤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했다. 자신의 취향과 타인의 인정 사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가끔 꽤 어려운 대화들이 있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낡은 농가주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의 취향인 세련된 타운하우스 이야기로 주제가 전환되는 과정의 대화에서 오는 혼란과 같은 것이다.


편리함과 깨끗함에 초점을 둔 취향이 아닌데, 이야기는 어느새 그쪽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완전하게 정돈되지는 않은 마당과 삶의 흔적이 베어나는 주택에서 내 손으로 하나씩 다듬으면서 살고 싶은 로망은 의도치 않게 얼마나 괜찮은 타운하우스들이 세상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무지의 부끄러움으로 수렴되고 만 적이 있다.


몇 시간쯤 후에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 다녔다. 난 조금 불편한 것이 좋은데, 난 서걱거리는 느낌이 나는 살림살이를 만지고 다루는 게 재밌는데, 반짝반짝 새 빛이 눈부신 것보다 손길 닿아서 윤이 나는 집을 가꾸고 싶은 건데.


전활 걸어 다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좋은 집, 더 비싼 집, 으리으리한 집을 몰라서 농가주택을 좋다고 한 것이 아니라고. 각자 자기가 추구하는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당신은 나의 취향을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았다고. 앞으로 우리 서로의 취향에 대해 간섭하지 말자고.


하지만, 다시 전화를 걸었을 리가 없다. 이런 대화는 수없이 반복되어 왔고, 심지어 한 때는 옆에서 그런 대화를 지켜보다가,


아, 저렇게 해야 상대보다 우월하게 되는구나.


하고 배우려고 새겨두기까지 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제 읽은 브런치 작가의 글에서 타인이 자신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고 판단하는 의도의 말을 건넸을 때 그것은 그저 그 사람의 편견의 정도를 내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부분을 읽고, 머릿속이 갑자기 맑아졌다.


그래! 편견이었어! 그 사람의 편견!


비슷한 성향의 지인에게 이를 알리자, 그녀 역시 마음이 후련해졌다고 한다. 가끔 개인의 취향에 대한 대화는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나 역시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취향을 편견에 휩싸여 존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되짚어 보았다.


존중, 단어는 짤막한데 그 의미도 그에 따른 언행도 얼마나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는지 무게감이 참 묵직하다. 내가 부디 개인의 취향들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기를, 나 역시 나의 취향을 존중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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