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고 다니지 않지만 입을 옷은 왜 없는가

2021. 12. 12.

by midsunset


옷장을 뒤적뒤적거리다가 문득 유난스럽게, 옷이 가짓수가 너무 적은 것 같은 날이 있다. 이렇게 사 들여도 되나 싶게 뭔가를 많이 사 들이던 날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입으려면 별 게 없다.


옷이 없다고? 그럼 그동안 벗고 다녔니?


엄마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아서 피식 웃는다. 벗고 다니진 않았지. 그런데 오늘은 썩 내키게 입고 싶은 옷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지.


어떤 날은 대충 주워 입어도 꽤 마음에 드는 착장이라 기분이 좋고, 어떤 날은 새로 산 옷을 잘 차려입었은데도 이건 아닌가 싶어서 집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 날이 있다. 그날의 옷이 그날의 내 기분을 좌우하는 날들이 있는 반면 내가 뭘 입었나 훑어볼 겨를도 없이 바삐 지나가는 날도 있다.


나는 무채색의 옷을 좋아한다. 웬만하면 블랙 앤 화이트, 분위기를 조금 내고 싶을 땐 베이지와 그레이. 연한 파스텔톤의 셔츠와 니트들이 내가 가진 옷의 대부분이다. 가끔은 원색의 옷도 사 들인다. 진한 블루, 진한 와인, 선명한 노랑의 옷들도. 포인트로 두고 싶은 색 하나에 나머지를 무채색으로 도배하면 기분이 산뜻해지는 것 같다.


화려한 스타일은 꽤 좋아하면서도 그저 그걸 잘 소화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좋다. 세상 수수하게 생긴 내 얼굴에 어울릴만한 옷을 나는 잘 알고 있는 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옷이 무엇이길래, 추위와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라 배웠는데, 이 수많은 옷 중에서 냉큼 손이 가는 옷이 없는 것일까. 충동구매도 잘 안 하는 편이라 하나하나 아주 신중하게 잘 골랐을 텐데, 마음에 들어서 얼른 입고 싶어 하며 샀을 텐데 그때의 호의는 왜 식어버렸을까. 사람 마음 참 간사하네, 생각한다.


아무래도 정리를 한 번 할 시점인가 보다. 애정이 식어서 손이 한참 안 가는 옷을 옷장에서 빼내고, 이런 옷이 있었네, 하는 옷들이 눈에 들어올 테지. 그래도 손이 가는 옷이 없는 것 같으면 그땐 결국 쇼핑을 하러 나서야겠다.


엊그제 지나가다 본 연보라 색 부드러운 니트가 왠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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