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편지

여고시절만의 특권

by midsunset

단풍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음이 나오던 여고시절, 나는 밤 새는 것을 좋아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밤 열한 시, 씻고 책상에 앉으면 어느덧 어둠이 짙게 내려앉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자정이었다. 남은 숙제와 오답 노트 등을 뒤적거리다가 공부가 지겨워지면 연습장을 펴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길에 흘러나오던 라디오 속 사연 이야기, 언니와 함께 듣다가 유난히 좋아서 수십번 반복해서 들은 노래의 가사, 좋아하는 선생님이 건네 준 음료수를 먹지 못하고 가져와서 책상에 두었다는 등 그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길쭉하게 두 번, 삼각형을 만들어가며 접은 편지의 끝에 TO ㅇㅇ, FROM ㅇㅇ, 이름까지 적고 나면 대단한 작품을 하나 만들어 낸 것처럼 마음이 흡족했다. 몇 시간 뒤면 만날 친구에게, 이 깊은 밤에 그리운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나의 이야기들이 그 아이를 미소짓게 하겠지, 생각하며 책가방 속에 편지를 넣고 짙은 푸른색으로 하늘이 변해가는 새벽에 잠을 청하곤 했다. 길어봤자 두 세시간, 그 잠깐의 잠을 자고 아침을 맞이해도 하루가 크게 힘들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 젊음은 역시 대단한 거였구나, 생각한다.

아침 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 일찍 등교한 단짝 친구를 만나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들고 계단 사이에 놓인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1교시 시작종이 울리면 하던 이야기를 끝내지 못해 아쉬워하며 밤에 써 온 편지를 서로 건네고 각자의 반으로 향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잠 못드는 밤이면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이 깊은 밤, 누군가와 나눈 시간들이 좋아서 그 그리운 마음을 담아 아무 이야기라도 끄적끄적 써서 기쁜 마음으로 건넬 수 있었던 것은 여고시절만의 특권이었겠지, 생각하며 그 때의 추억들을 되짚어본다.

그리운 나의 친구를 떠올리며, 따뜻한 추억을 남겨준 학창시절에게 고마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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