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다음에 찾아오는 연속된 비극에 대하여
초반에는 책 몇 장을 넘기는 일이 어려웠다. 너무 어둡고 무거워서 몸이 축축 내려앉는 것 같았다. 과거에 일어났던 비극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비극 속을 살아간 채로 등장한다.
책의 부제목에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적혀있다. 소제목마다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들이 세 개씩 묶여있다. 그것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를 패턴으로 표현해 낸 단어들로 보였다.
남자는 청소년기에 살인을 저질렀다. 그와 같은 학교에 존재했던 여자, 남자의 곁을 맴도는 아주머니가 주요 등장인물이다. 남자의 과거를 묵묵히 들어주는 여자, 잠시나마 여자와 평범한 시간을 보내는 남자, 그리고 그들의 평범한 시간을 용인하지 않는 아주머니, 무덤덤하게 그려낸 세 사람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사람들은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살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를 이해한다, 말하면서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을까, 용서할게 라고 말하며 정말 용서했을까. 이제 그만 좀 하세요,라고 말한 들 그 말 때문에 그만할 수가 있을까.
소설이 끝을 향해 갈 때, 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그냥 이야기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남자가 “내가 저지른 비극을 벗어날 수 없어서 나는 잠시 평범하게 살다가 오늘 너를 떠날 거야”라고 말해준다면, 혹은 여자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그리고 그 아주머니가 “결국 너까지 죽어야만 내가 이 짓을 그만 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다면.
그런 가정을 해 보다가 다시 생각을 고치게 됐다. 그렇게 결국 떠나고, 그래도 함께 할 수 없고, 어느 날 다시 살인이 일어나는 것은 역시 막을 수 없는 일이겠구나.
그래서 누군가는 행복해지는 걸까?
그래서 이 비극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아니었다. 작은 에피소드는 끝나도 결국 다시 비극이다. 비극이 없던 시절의 일상도, 누군가에게 다시 찾아오는 평범한 행복도 없다. 죄에 대한 벌, 이별 후에 오는 상처,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아픔이 뒤따를 뿐이다.
작가가 말하는 패턴은 결국 비극이었을까.
이미 일어나버린 비극 뒤에는 어떤 노력과 변화에도 다시 비극이 이어지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비극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할 테니. 이것은 신이 애초에 만들어놓은 인류의 시스템일지도.
마음이 아팠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쓰리고 불안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둔 여인으로 평범하게 삶을 살아낸 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감사할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요즘, 길고 멀게 인생을 바라보며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극이 연속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