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파 vs 용건파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심지어 각종 고지서까지 받을 수 있는 (진짜 대단하다.) 카카오톡을 이용하면서 첫 톡을 건네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사실 고백하자면, 그 부분이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안부파’ 였던 나는 ‘용건파’ 들에게 톡이 올 때마다 굉장히 불쾌하거나 서운해지곤 했다. 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안부 좀 물어주면 안 돼?’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내가 ‘용건파’를 이해하게 된 것은 한 지인 덕분이었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자주 보게 되는 엄마가 있었는데 인상도 좋고 여러 번 만나도 심성도 참 착해 보이는 엄마였다. 그런데 톡을 보낼 때는 언제나 본론부터 시작했다.
‘오늘 앞치마 보내셨어요?’
‘다음 주에 집에 놀러 오실래요?’
나는 그 엄마의 톡을 받으면 언제나 당황했다. ‘날씨가 참 좋네요, 점심 드셨어요?’ 라던지, ‘요즘 바쁘시죠?’라는 말 한마디 건네주면 참 좋을 텐데 왜 늘 용건부터 바로 물어보는 걸까, 사람이 참 어딘가 매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인연은 이렇게 저렇게 계속 이어졌고, 내가 제주도로 내려오면서 생활 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그 엄마에게서 톡이 왔다.
‘잘 지내고 있어요? 제주도는 날씨 좋죠?’
어머나, 안부에 날씨까지 묻다니, 이 엄마가 변한 걸까 싶었다.
‘네, 잘 지내요.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에요?’
반가운 연락에 기쁜 마음으로 톡을 보내면서도 그래 봤자, 이제 또 바로 용건을 이야기하겠지, 했었다.
‘그냥 생각나서요. 자주 보다가 못 보니 아이도 저도 허전하고 그러네요.’
나는 그 엄마의 톡에 멈칫했다. 오늘의 본론은 ‘진짜 안부’였구나, 이 사람, 그냥 미사여구를 원래 잘 쓰지 않는 그런 사람인걸까.
그 무렵, 지나가는 어떤 글에서 본론만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에 대한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할 이야기는 따로 있으면서 안부를 묻거나,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왠지 구차하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다들 바쁜 와중에 길어지는 대화로 시간을 뺏고 싶지 않다는 것도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저 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어쩌면 나름의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제주 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잠깐 머물렀을 때 아주 잠시 시간이 나서 그 엄마에게 서울에 왔다고 연락을 했다. 그 엄마의 답장은 역시나, 짧고 간결했다.
‘지금 어디 계세요?’
아이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데, 집에서 바삐 나오느라 별 게 없다고, 메모장과 연필 등을 작은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 삼십 분가량 아이들이 함께 놀고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뭐 챙기지도 못했는데 고마워요. 짧게라도 봐서 반가웠어요.’
내가 건넨 인사에 그 엄마의 답장은,
‘서울 오시면 언제라도 연락 주세요.’
였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동안 가졌던 의문과 서운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나는 굳이 ‘안부파’ 에게만 훈훈한 정이 있고 ‘용건파’는 매정하다고 분류하지 않는다. 나름의 사정과 배려가 내가 모르는 사이 그 속에 담겨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에게 용건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애정의 의미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