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백신 접종 후기

이겨내줘서 고마워요

by midsunset


나의 친정엄마는 의료진이다. 우선 접종 대상자여서 백신이 막 들어왔을 무렵, 접종을 받았다. 접종 날짜가 정해지고, 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몸 상태가 혹시 안 좋으면 맞으면 안 된대. 드시고 계시는 약 자세하게 다 이야기해야 해.”


엄마는 얼른 백신 맞고 딸도 보고 손주들도 보고 외할머니도 보러 가면 얼마나 좋겠냐며, 어디 아픈 곳도 없고 복용 중인 약에 대해서도 잘 얘기했다고 하셨다.


“팔만 좀 무겁고 욱신거리고, 아무렇지도 않아. 걱정 마.”


1차 접종을 마친 날, 엄마는 별 증상은 없고 백신 덕분에 연차를 받아 모처럼 낮잠도 자고 푹 쉴 수 있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다음날 아침까지 엄마가 연락이 없자,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제 새벽에 죽을 뻔했는데 지금은 말끔히 나았다. 기적 같아.”


엄마의 말에, 나는 왜 응급실에 바로 가지 않으셨냐며 화를 냈다가, 웃으며 새벽에 사경을 헤맨 이야기를 풀어내는 통에 같이 웃고 말았다.


엄마의 접종 후기는 아주 자세하고 길었고 섬세했다. 일단 오전에 일찍 접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별다른 증상도 없고 갑작스러운 평일 휴무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날씨가 선선하고 좋아서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나한테는 낮잠을 푹 자겠다고 해 놓고 산책을 다녀오셨던 모양이다. 산책을 다녀와 식사를 하시고 드라마를 보다가 끔뻑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자정이 다 되어가더란다. 팔이 여전히 무겁고 척추 주변으로 등 결림이 시작되더니, 앉지도 서지도 못하게 온 몸이 저려왔다고 한다. 엄마는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뱅뱅 도는 듯 어지러운 시선으로 집을 둘러보았는데 집이 너무 지저분해 보였더란다. 우리 딸들이 내가 죽으면 달려와서 집을 보고 우리 엄마 이렇게 지저분한 사람이었나, 욕할까 싶어 이를 악물고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방을 닦기 시작했단다. 방을 닦다가 그릇장을 보니, 곱게 챙겨놓은 커피잔과 그릇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릇 좋아하는 두 딸들이 서로 가지고 싶을 텐데 혹여 의견 차이가 있을까 싶어 엄마는 그 앞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며 그릇을 각 딸들의 몫으로 나눴단다. 타이레놀 덕분인지 정신 팔리도록 집안일을 돌본 덕인지 슬슬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저리고 아픈 느낌이 들면서 창 너머 파랗게 날이 밝아가는 것을 보았단다. 그때도 보통의 통증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여기서 정신줄을 놓으면 저세상에 가 있겠구나, 생각했단다. 일을 하면서 원래부터 등과 팔에 근육통이 늘 있었던 터라, 평소의 통증과 비교를 할 수 있었다고. 엄마는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일까, 한참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때, 찬장 위칸에 놓인 선물 받은 맛있는 원두가 떠 올라서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아 커피를 내렸단다. 커피 향이 너무 향긋하고 맛도 좋아서 커피잔을 놓고 소파에 앉아 즐겨보는 드라마 채널을 틀어놓고 한참 동안 커피타임을 즐겼단다. 그리고는 스르르, 졸음이 몰려와서 잠깐 잠이 들었고 정오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는데, 글쎄, 기적처럼 원래 있던 등 결림도 말끔히 사라지고 몸이 가뿐하더란다.


“그래서 네 엄마가 죽다가 살아났다니까. 나는 그대로 네 아빠 따라 저 세상 가는 줄 알았어.”


깔깔 웃어대는 엄마를 따라 나도 웃었지만 이내 그 고통 속에서 처량하게 앉아 방을 닦고 그릇을 챙겼을 엄마를 떠올리니 눈물이 마구 흘렀다. 그 와중에 딸들한테 전화를 얼른 하지, 왜 안 했느냐고 따졌더니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더 울컥했다.


“평생 엄마 속 안 썩이고 잘 커서 잘 사는 딸들한테 내가 남길 말이 뭐가 있어, 명이 이만큼이면 이만큼 살다가는 거구나 했지. 그래도 내가 할 일이 더 있는지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그저 고맙지. 아프던 데도 안 아파졌는데 얼마나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니?”


감사하고 행운이다. 엄마 말씀 그대로, 얼마나 행운이고 감사한지, 나는 하루 종일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 살게 해 주셔서, 그 고통 속에서 이겨내고 견디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자꾸 되뇌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이겨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아플 땐 딸한테 꼭 이야기해 줘. 잘 자요.


그리고 엄마의 답장.


우리 딸, 걱정 마. 엄마도 고마워. 건강하자.


우리 엄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용감하고 담백한 분이셨나보다. 그저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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