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다행이다

2021. 12. 19.

by midsunset


아침부터 새소리가 시끄럽다. 주말에는 제발 늦잠 한 시간만 사달라고 애원하며 재운 아들들이 늘 그렇듯 여섯 시부터 일어나 놀고 싸우고 떠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형아를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움직여보려는 동생, 그 동생의 말이 맞더라도 절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지 않은 형아. 둘이서 또 아웅다웅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불러,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서로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고, 너희는 한 팀이라고.


큰 아이가 손을 들어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다녀오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별안간 어지럽고 힘이 없다고 했다. 놀라 달려가 보니, 몸이 차고 입술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가끔 배변을 참곤 하는 큰 아이는 서너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나는 물 한 잔을 건네고 변기에 앉기를 권했다. 처량한 얼굴로 죽이 먹고 싶단다. 볼 일을 보고 난 큰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다진 야채와 소고기를 볶아 죽을 만들었다. 등 뒤로 “엄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하는 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죽을 한 그릇 뚝딱 먹고, 총총 거실을 뛰어다니던 아이가 어제 배송받은 비밀상자 만들기 키트를 꺼내어 지금 해 보고 싶다고, 혼자 할 수 있다고 졸랐다. 개미만큼 작은 나사들과 아이가 맞물려가며 조립하기 힘든 나무 조각들이라 방학 때 함께 해 보려고 사 뒀는데 이 머나먼 제주까지 어찌나 택배가 빨리도 달려왔는지, 집 앞에 놓인 택배 상자와 그 목록을 하교하던 아이에게 딱 들켜버리고 말았다. 혼자 할 수 있다면 해 보라고 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일곱 시면 아침밥을 먹는 아이가 한 시간을 버티느라 허기가 극도로 지고, 동생이랑 싸워서 혼나느라 화장실 갈 기회를 놓쳐서 입술이 새하얗게 질린 일요일 아침, 늦잠도 잘 수 없고 아이의 건강에 대한 염려도 놓을 수 없는 엄마의 숙명을 쏟아지는 물줄기에 그릇을 씻어내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자리를 찾는 싸한 느낌이 가슴팍에 남아있다.


낑낑 거리며 나사를 돌리다 빼다 하는 아이의 곁에 앉아 도움이 혹시 필요한지 물었다. 여기 좀 잡아주세요, 이것 좀 꽉 끼워주세요 하는 요청에 따라 나는 또 어느새 열심히 키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니지, 혼자 해 보기로 했지, 생각이 들어 드라이버를 아이 손에 쥐어주며,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엄마 도움 필요하면 또 이야기해 줘. 말을 남기고 손을 놓았다. 제법 무언가 모양을 갖춰가는 상자를 보고 눈을 반짝 빛내며 조립하는 큰 아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이야기해야 해, 배가 너무 고플 땐 물도 마시고 사탕도 먹고 하는 거야. 엄마가 곁에 없는 시간에도 스스로 몸을 돌볼 줄 알아야 해.


한껏 나사 돌리기에 재미 붙인 아이가 네, 네. 대충 대답했다. 조막만 한 얼굴에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한 여덟 살 난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손도 살며시 쓰다듬어봤다. 입술이 평소처럼 붉고, 포동포동한 손도 따뜻했다.


휴, 다행이다. 그제야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식물도 사람도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