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언제부터 돈을 벌었어요?

2021. 12. 22.

by midsunset


아침에 작은 아이를 등원시키고 우체통에서 각종 고지서 한 꾸러미를 가져왔다. 세금을 내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진 나이가 되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난다. 궁금한 눈빛으로 다가온 큰 아이에게 세금에 대해 대략 설명을 했더니 대뜸 자신은 언제부터 돈을 벌 수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언제부터 돈을 벌 수 있었냐고도 함께 묻기에 이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부모님의 용돈이 아닌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십 대가 되어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학원 강사였다.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작은 보습학원이었는데 학원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일부터 기초적인 영어수업과 더불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묻히고 온 아이의 입과 손 닦아주기와 하원하는 아이들 가방 챙겨주기까지 은근히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당시 다른 친구들의 아르바이트 시급에 비해 꽤 벌이가 좋아서 집에서 먼 곳임에도 시간이 안 맞아서 그만둘 때까지 꽤 오랫동안 그곳에서 일했다. 새로 온 아르바이트 강사에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근무일을 하루 남긴 어느 날, 원장 선생님께서 카드를 주시며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고 하셨다. 날이 유난히 덥고 끈적한 날이었다. 맛있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남은 것을 냉동실에 넣고 있는데 원장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일할 때 아이스크림 좀 사 줄 걸, 나처럼 커피만 좋아하는 줄 알고 그 생각을 못 했네. 먹고 또 먹어요. 그동안 날이 너무 더웠는데 고생 많았어요.”


원장 선생님께서는 매번 계좌로 급여를 보내주셨는데, 그날은 하얀 봉투에 현금을 담아서 직접 주셨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것을 막느라 연신 혀를 날름 거리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봉투를 열어보니, 근무시간으로 계산된 급여에 오만 원이 더 들어있었다. 혹시 몰라서 원장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내용을 말씀드렸다.


더울 때 아이스크림 사 먹으라고 넣었어요. 멀리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요. 근처에 오면 놀러 오고,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요.


서른 살가량 어린 나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 주시던 원장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에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인연이 닿으면, 당연히 닿을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그 근처에 갈 일이 생기지 않아 그렇게 인연이 끊어졌다.


처음으로 번 돈으로 무엇을 샀는지, 기억은 나질 않는다. 내 성격에 뭔가 특별한 것을 샀을 것 같은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기억나질 않는다. 지갑을 샀던 것 같기도 하고.


무튼, 첫 돈벌이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직업 변경이 좀 있었던 나의 공식적인 돈벌이는 몇 년 전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이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처음으로 돈을 벌면 무엇을 살까, 한참을 고민했다. 차를 살 수도 있냐고 묻기에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해 줬다. 자신도 얼른 어른이 되어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엄마한테 맛있는 것도 사 주고 싶단다.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세금을 내는 어른, 동네 친구들과 가족이 전부였던 유년시절을 지나 어떤 큰 집단에 속하며 권리와 의무를 갖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때로는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을 생각이 들만큼 힘겹다는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조금 천천히 알아도 괜찮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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