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늙고 싶다

2021. 12. 31.

by midsunset


아침을 먹는데 큰 아이가 말했다.


“저 내일이면 아홉 살이 되는 거예요?”


“응, 그렇지. 떡국 먹고 나면 아홉 살이 되는 거야. 동생은 일곱 살.”


즐거워하던 아이가 엄마 아빠 나이도 한 살씩 더해서 계산해준다.


“우와, 우리 가족 모두 합하면 곧 백!”


덧셈을 요리조리 해 가며 나이를 계산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웃음이 참으로 해맑다. 나도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 설레고 즐겁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한 살 더 먹는 일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게 된 걸까,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부쩍, 고작 인생 중반에 이런 소리하기가 참 가소롭지만, 생전 신경 쓰지 않던 부분에서 노화의 진행상황을 발견하며 놀라곤 한다. 얼마 전에는 지인이 불시에 찍어준 사진 속 웃고 있는 나의 눈가에 가닥가닥 나뉘어 뻗어진 주름을 보고 한참을 확대했다 축소했다 하다가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어느 날에는 샤워를 하고 몸에 로션을 바르는 일을 깜박하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팔도 다리도 하얗게 일어날 정도로 바싹 말라서 영화 ‘뷰티 인사이드’ 주인공처럼 하룻밤 사이에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수분은 빠져나가고, 주름은 늘어가고, 이 한 몸을 사십 년 가까이 매일 사용했으니 전자제품으로 치면 거의 골동품인 셈이라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하는데 뭔가 방법이 있을까 싶어 영양제와 운동법, 화장품 등을 자꾸 검색했다. 수많은 광고가 나를 유혹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확신을 안겨줬다. 이 모든 제품을 바르고 먹고 사용하면 거의 뭐, 전지현 리즈시절 정도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시간에 스마트폰을 잡고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고 눈이 건조하고 침침했다. 어깨도 목도 불편한 상태에서 피곤한데 잠은 쉽게 오질 않았다. 목전까지 다가온 잠을 내가 볼 게 많다고 밀어냈으니 어쩔 수 없이 떠난 것이로구나, 생각하며 오랫동안 뒤척였다. 이 시간에 잠이나 푹 자는 게 제일 노화방지에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한 살 더 안 먹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럴 방법은 없다. 나이는 어쩔 수 없이 먹어가겠지만, 빨리 늙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욕심이겠지만 마음도 몸도 천천히 늙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살기로 다짐해본다. 새해를 맞이하는 지난 연말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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