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에서의 하루

2022. 1. 2.

by midsunset


제주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여행을 왔다. 얼마 전,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기 전에 살던 곳을 벗어나 조금 멀리 다녀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에어비앤비 어플을 켜고 한참 숙소를 찾았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때면 늘 그렇듯, 초반에는 곳곳의 예쁘고 낯선 집들을 구경하는 것에 시간을 듬뿍 쏟는다. 그러다가 아이코, 이제 진짜 갈 곳을 찾아야지 하고 정신이 들면 마음에 드는 몇 집을 콕 찍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체크하고 숙소 주변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마당에 있고, 오래된 주택이지만 내부가 깨끗하고 예쁜 소품이 잘 배치된, 내 취향에 딱 맞는 집을 찾았다. 집에서 어느 정도 먼 곳이고, 안 가본 동네인 데다 바다도 가깝고 먹을거리도 꽤 있는, 여러모로 적당한 집이었다.


오는 길에 우동이 맛있다는 집에 들러 점심을 먹고, 날이 따뜻해서 지나는 길에 봤던 민속촌에 들렀다. 제주도 특유의 이국적이면서 정겨운 초가집들 사이 동백과 귤이 가득해서 산책하기 참 좋았다.


체크인 시간을 조금 넘겨 숙소에 도착했다. 낯선 동네 골목에 들어서서 바다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니 오른편에 사진에서 본 집이 보였다. 아기자기한 마당을 지나 오래되고 낡은 집을 예쁘고 단정하게 잘 만들어놓은 집 현관이 보였다. 메시지로 받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어린 시절 친척집에 온 듯 옛날 집 같은 구조의 집 내부가 보였다. 문턱이 높은 거실에 들어서니 양쪽으로 침실이 있고 정면에 커피잔과 핸드 드리퍼가 놓인 그릇장이 있었다. 침실에 들어가 누우니 넓은 창으로 적당히 넓은 마당과 키 작은 야자수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였다.


불편함은 하루이기에, 좌식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밥도 맛있고, 화장실이 커튼으로 되어있는 것도 괜찮고, 바닥은 뜨끈한데 웃풍이 들어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것도 정감이 느껴져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어떤 호텔보다 좋은 것 같다고 신기해하며 구석구석을 구경했고, 남편과 나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재밌는 여행이다, 생각하며 내일은 어디를 둘러볼까 고민하다가 잘 밤이 되었다. 아이들을 눕히고 눈을 감았는데,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아이들의 숨소리가 일정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꿈나라로 간 것이 분명한데, 침대도 편안하고 침구도 푹신하고 좋은 냄새까지 나서 쉽게 푹 잠이 들지 알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몸이 쑤욱 침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스르르 느껴지다가도 팔이 저리고 다리가 저려서 다시 뒤척거리기를 반복했다. 이 집 너무 예쁘고 좋다며 수십 장 사진을 찍고 감상하던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수면 가능한 시간이 줄어들수록 내 몸과 하나가 되어 새벽을 건너뛰고 아침을 맞이하게 해 주던 우리 집 침대가 너무 그리웠다.


아침이 밝았다. 잠을 잔 것인지, 침대에 그저 누워있다가 일어난 것인지 모를 만큼 지루한 새벽이었다. 덕분에 어젯밤에 못 보고 잔 좋아하는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꼼꼼히 챙겨보고 맞이한 아침이었다. 잘 잤다며 기지개를 켜는 아이들의 얼굴이 뽀얗고 보송했다. 남편과 나만 못 잔 모양이었다. 역시 잠은 집이지, 중얼거리며 아침밥을 준비했다.


음악을 틀고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눈부신 햇살 덕에 마당을 바로 보기가 어려웠다. 나무로 된 벽과 창틀, 어디선가 느껴지는 한기, 눈이 편안한 우드톤의 소품들과 은은한 아이보리색 커튼을 둘러봤다. 잠이야 오늘 밤에 잘자면 된다. 참 예쁘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잘 찾아왔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눈이 시린 듯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늘 밤에는 진짜 잘 자야지, 예쁘고 낯선 집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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