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한 세탁소 아저씨

2022. 1. 16.

by midsunset


요즘에는 세탁소에 굳이 무거운 옷을 들고 가지 않아도 어플 터치 한 번이면 방문 수거가 가능하고, 날짜 맞춰 찾으러 가지 않아도 집 앞까지 떡하니 세탁이 끝난 옷가지들이 도착한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매일 놀라워지는 현대 사회에서 옛 시절을 떠올리면 그저 웃음이 난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 집에서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에 세탁소가 한 곳 있었다. 아저씨의 사연은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떤 부분은 이해가 되는데, 당시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가끔은 화가 날 정도로 답답했다. 아저씨는 일단 늘 담배를 태우고 계셨고, 약속한 날짜에 옷 세탁을 끝내 놓는 경우가 드물었다.


“저기, 저녁에 와, 저녁에.”


교복이나 아빠의 정장 같은 것을 세탁소에 맡겼다가 찾으러 가면 아저씨는 늘 좀 더 있다 오라고 하셨다. 딱히 이유도 말씀해주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고 언니와 함께 아저씨 흉을 보며 걸어가 세탁소에 도착하면 세탁소 한쪽에서 예닐곱 살의 딸아이와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이고, 내가 저녁을 이제 먹어. 애기 밥 먹이다가 늦었어. 조금만 기다리던지 내일 와.”


짜증도 나고 대들어 불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저씨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서 언니와 나는 주로 건너편에 있는 책 대여점에 갔다. 책방 사장님께 전화를 빌려 엄마에게 세탁소 아저씨가 곧 해 주신다고 해서 책방에 들렸노라 알리고, 집에 빌려 갈 책들을 고르거나 그 자리에서 읽었다. 언니와 나는 책방의 전면 유리에 기대어 세탁소 아저씨가 다림질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옷걸이에 옷을 걸고 비닐을 씌우는 것을 보면 책을 빌린 값을 치르고, 세탁소로 건너갔다.


담배 연기인지 다리미에서 뿜어져 나온 수증기인지 모를 뿌연 것이 채워진 세탁소에 들어가면 아저씨가 겸연쩍게 웃으며 우리에게 세탁한 옷들을 건넸다. 입가에 김치 국물이 남아있거나 깨 또는 김가루가 붙어있는 얼굴에, 웃지도 울지도 않는 것 같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아저씨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아직 치우지 않은 식사자리 근처에 딸아이가 막대사탕을 빨고 있다가 우리를 졸린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다. 우리가 인사를 하고 나오면 아저씨는 담배를 들고 가게 밖으로 따라 나오셨다.


“가라!”


아저씨의 투박한 인사에 우리도 어정쩡한 폼으로 인사를 하면서 멀어지면 삐죽하게 양갈래로 머리를 묶은 아저씨의 딸아이가 가끔 그 옆으로 천천히 나타나면서 손을 흔들어주곤 했다.


아저씨의 불성실한(?) 근무 태도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그 세탁소를 자주 이용했고, 아저씨와 딸아이에게 다정했다.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이 간식거리를 챙겨 세탁소에 자주 들렀고, 동네 아이들의 작아진 옷들은 아저씨 딸이 많이 물려 입었다.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투박한 동네 가게 아저씨와 그 집 딸이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엄마가 된 후에 기억을 돌아보니 그때의 장면들이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떠올려지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동네에서 뛰어놀던 친구들도 어디선가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불성실한 듯 성실하게 살아가던 세탁소 아저씨가 있었고, 그 아저씨가 사랑으로 기르던 딸아이가 있었고, 그 시절 그 동네에 참 따뜻한 어른들이 있었다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을 푹 자게 해 주는 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