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이 좋은 이유

2022. 1. 27.

by midsunset


어렸을 때 잠깐 배우다가 그만둔 바이올린이 아쉬워서 둘째 아이를 낳고 어린이집에 보낸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일이었다. 시간도 많고, 할 일도 별로 없을 때는 생각도 나지 않더니,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는 좀이 쑤신다는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으나 그 무엇이든 자꾸 배우고 싶고 즐기고 싶고 해 보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치솟던지, 이 아이들을 조금만 더 키워서 내가 여유 시간만 갖게 된다면 씹고 맛보고 즐기고, 배우고 뽐내고 매일 신이 날 것 같았다.


바이올린을 들고 선생님 앞에 서서 연주를 하고 칭찬을 받고 숙제로 받은 악보를 연습하고, 실력은 별로여도 마음만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 같았다. 운전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손가락을 짚어보고 빈 손으로 활을 쥐어보고 유모차 손잡이에 손가락 간격을 맞춰봤다. 그나마 잘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반짝반짝 작은 별’이나 ‘징글벨’이었지만, 그 몇 곡이라도 가족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박수를 치고,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 아이가 바이올린 줄을 퉁퉁 튕겨보고, 큰 아이가 신기한 듯 활을 끌었다 밀었다 하며 관심을 보였다.

종종 답답한 기분이 들거나, 힘이 빠지도록 가라앉거나 너무 들뜨는 날에, 나는 틈만 나면 바이올린을 꺼냈다. 생각해봤자 해결이 나지 않는 문제들을 덮어놓을 때는 악기 연주나 뜨개질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육아 중에는 이상한 호르몬이라도 특별히 분비되는 것인지 그 무렵의 기분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쏟아지는 듯 들쑥날쑥했다. 손에 붙는 취미가 없었다면 어디 산에 가서 소리라도 크게 질렀을 것이다.


아직 계이름도 모르는 나이에 둘째 아이가 바이올린을 너무 배우고 싶다 하여 스즈끼 교육 방식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곳을 찾아가서 가장 작은 사이즈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이사와 이런저런 일정 문제로 그만두었고, 최근에는 큰 아이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가 아프네, 손목이 불편하네, 서 있으면 쉬가 마렵다는 등 얼마 못 갈 것처럼 시큰둥하게 두세 번 레슨을 받고 나더니, 어느 날부턴가 틈만 나면 바이올린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꺼내면 나도 내 바이올린을 꺼내서 같이 연주를 했다. 나도 배우다 말았으니 볼품없는 솜씨에, 큰 아이도 겨우 쉬운 몇 곡을 배운 상태이니 둘이서 해 봤자 딱히 연주다운 연주도 아니었다.

재밌는 것은 두 초보자가 그 와중에 서로 위로하고 칭찬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와, 많이 늘었다, 우리 아들”


“엄마, 진짜 멋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같아요.”


고작 한 달 레슨을 받은 아홉 살 아들의 실력은 고슴도치 어미 눈에는 음악 천재처럼 보였고, 이제 막 바이올린을 알아가는 아이의 눈에 멜로디를 연주하는 엄마는 바이올리니스트 같이 보였나 보다.


숙제하고, 뛰어다니며 놀다가 지쳐서 앉아있을 때 간혹 내게 아이들이 물어보곤 한다.


“엄마, 저 이제 뭐할까요?”


처음엔 그 질문이 참, 대답하기 난감했다. 왜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지, 싶었다.


“글쎄, 뭘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는 거 다 해도 되는데?”


했더니,


“아! 저 바이올린 할 수 있어요. 우리 바이올린 하자!”


두 아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각자 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를 뽐냈다. 나는 이중창을 모두 꽉 닫고, 다행히 사람들이 아직 소음에 과하게 예민해지지 않을 시간인지를 확인했다.


“형아야, 나 피아노로 그거 칠 수 있어!”


작은 아이가 어느새 피아노 앞으로 갔다. 한참을 둘이서 이것저것 서로 연주를 해 주더니,


“우리 이제 종이접기 할까?”


하고 큰 아이가 색종이를 가득 가져와 접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들,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이 진짜 많구나, 엄마 아빠도 취미가 많은데, 아들들도 취미가 많네.”


내가 말했다. 취미가 많아야 잡념이 줄어들고, 취미를 즐기는 시간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된다고 덧붙였다.


“엄마, 저 아까 속상한 일 이야기했었잖아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다 잊어버렸어요. 정말 취미생활은 좋은 것 같아요.”


큰 아이가 말했다. 방과 후 활동 시간에 큰 형아들 때문에 너무 속상했었다는 이야기를 한참 했었던 날이었다. 정말 다 잊어버린 것 맞나, 싶지만 뭐 그렇다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 취미생활 덕에 잡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도 아이 입장에서도 속상한 일을 잠시 잊을 수는 있었나 보다.


덕분에 나도 바이올린을 자주 꺼내는 요즘, 어차피 고민해도 마음대로 잘 안 되는 세상인데 취미생활이나 신나게 하면서 살아가야지 싶어서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꽤 근사한 곡을 연주할 수 있기를 꿈꾸며. 얼마나 좋은가, 취미생활에 집중하는 동안 내일 모레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연휴를 잠시 잊었다. 잠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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