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마블 같은 세상

2022. 2. 6.

by midsunset


두 아들들과 앉아 부루마블 게임을 했다. 350만 원씩 나눠갖고 빨강, 파랑, 하얀색 말을 놓았다. 야심 찬 표정으로 서울과 제주를 사겠다는 큰 아이와, 주사위 수가 많이 나와서 빨리 월급 받는 것이 좋다는 작은 아이를 보며 같은 게임을 해도 재밌어하는 포인트가 참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많이 투자해서 많이 벌어야지, 부자 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생각했다.


전날 저녁에 아이들끼리 부루마블을 했다가 둘째 아이가 자신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그냥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며 도시 매입 거부 사태를 일으켰다. 어차피 한 바퀴 돌면 월급을 받으니 돈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하면서. 어느 도시에 걸려도 동생은 자꾸 안 사겠다고 하니 큰 아이는 심드렁해졌다. 그러다가 큰 아이가 호텔을 세운 도시에 작은 아이가 걸렸고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해야 하는 작은 아이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작은 아이가 매입을 거부하는 동안 큰 아이는 부지런히 도시를 사고 호텔을 세워놓았기에 작은 아이는 그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계속 숙박비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빈털터리가 된 작은 아이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게임을 마무리했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말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부루마블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방식과 비슷하기도 하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게 되고, 많이 투자했으나 생각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행히도 게임이기에, 진짜 돈이 아니기에 자꾸 내야 하는 돈이 많거나 원치 않게 내가 가진 돈이 줄어들어도 너무 아까워하지 말고 즐겁게 하면 되는 것이라 말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도시를 사 들였고, 그 도시마다 가장 비싼 숙박시설인 호텔을 세웠다. 아이들은 나름의 안목이 있는 것인지 어떤 것은 사고 어떤 것은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자꾸 아이들의 도시에 걸려 숙박료나 통행료를 지불하게 되고, 아이들은 황금열쇠나 우주정거장에 가서 딱히 내가 돈을 버는 일이 잘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건물 많고 돈 잘 버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돈을 지불하느라 하나 둘 도시와 건물을 은행에 팔고도 보유한 현금은 계속 줄어들었다. 이 녀석들, 꽤 수완이 있네?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재산을 불릴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별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큰 아이가 매입한 서울에 걸려서 가진 것을 다 털어도 통행료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됐는데, 작은 아이가 자신에게 도시를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황금열쇠가 있는데 그것을 이십만 원만 받고 사라는 것이었다. 타짜들 사이에 온 햇병아리가 된 기분으로 그렇게 나는 결국 파산을 했다.


두 아이들이 게임을 마무리한 후 가지고 있는 돈을 계산하는데 큰 아이가 육백이십만 원, 작은 아이가 육백사십육만 원이었다.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게임을 마친 작은 아이가 종이돈과 건물 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부루마블이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엄마가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딱히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 아들들이 게임을 잘하네.” 말하며 게임판을 접고 있는데 큰 아이가 내 팔을 만지며 말했다.


“엄마, 게임이잖아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씁쓸했다. 사실 부루마블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도 하니까 돈을 다 잃었을 때는 좀 허무했다. 심지어 보유세를 내라는 황금열쇠 문구에는 고지서를 받은 것 마냥 괜히 심장이 철렁했으니 말이다. 투자에는 영 감각이 없는 것인지.

나중에 부동산을 매입할 때는 이 아이들의 안목을 조금 빌려봐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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