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할 자유를 허하라
나이 탓인지 계절 탓인지 같이 사는 남성이 비실댄다. 이럴 때 그가 찾는 음식이 있으니 단백질과 비타민 A가 풍부해 원기 보충에 좋다는 그 음식, 바로 장어구이! 이 남성의 딸 역시 장어를 좋아하니, 나는 또 수산물 배송 사이트를 기웃거려 풍천 장어를 주문한다.
커다란 팬을 따뜻하게 달군 뒤, 장어 한 조각은 남편이 좋아하는 소금구이로, 다른 한 조각은 아이가 좋아하는 간장 양념구이로 조리한다. 채 썬 생강과 깻잎을 비롯한 쌈 채소, 명이나물 장아찌와 차려 내면 둘은 신이 나서 장어 두어 마리쯤 거뜬히 해치운다. 하지만 나는 그 장어를 먹지 않는다. 왜냐고? 장어는 내가 우주에서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먹을 것에 있어 호오가 극심했다. 좋아하는 돼지고기와 갈치, 소시지와 햄, 달걀과 우유는 지나치리만치 많이 먹었고, 싫어하는 음식은 입에 대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았지만 그 음식들을 싫어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니, 냄새! 냄새 때문이었다.
강낭콩에서는 비린내가 났고, 나물에서는 풋내가 났으며, 당근에서는 비누 냄새가, 오리고기와 양고기에서는 고린내가 났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조리해도 냄새가 나는데, 주변 어른들은 이유도 묻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이니 골고루 먹으라고만 했다.
그나마 나의 부모님은 심하게 강요하거나 강제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딱 한 번 아빠가 밥에 들어 있는 콩을 먹어야 식탁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입에 물을 잔뜩 품은 채 코를 비틀어 쥐고 알약을 먹듯 십수 개의 콩을 삼킨 적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지독한 편식가 어린이는 무난한 잡식가 어른으로 자랐다. 그때는 먹지 않았거나 못했던 음식들을 이제는 먹는다. 콩은 고소해서 먹고, 나물은 쌉싸름한 맛에 먹고, 오리고기와 양고기는 고린내가 좋아서 먹고, 당근은 아삭한 식감이 좋아 먹는다. 어렸을 때 맡았던 냄새들이 이제는 더 이상 역하게 느껴지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건강을 위해 챙겨 먹어야 한다는 의식이 싹터서이기도 하고, 요리를 하면서 식재료와 친해져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식재료 몇 가지가 있는데, 민물고기와 날 육고기다. 이 음식들은 여전히 냄새 때문에 친해질 수 없다. 추어탕과 선짓국 한 숟가락, 쏘가리찜과 육회 한 젓가락에서 훅 끼쳐오는 흙냄새와 피 냄새는 유쾌한 기분도 순식간에 불쾌함으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
이 와중에 ‘싫어하는 음식 월드컵’의 우승을 당당히 차지한 음식이 바로 ‘장어’다. 뱀장어, 먹장어, 붕장어, 갯장어까지 분류 체계를 불문하고, 장어탕, 장어초밥, 장어덮밥, 장어구이까지 음식 종류도 불문하고, 미슐랭 스타를 단 고급 일식당부터 길거리 포장마차까지 식당 종류도 불문하고, 장어라면 다 싫다. 장어를 싫어하는 이유는 비단 냄새 한 가지 때문만이 아니다. 생김과 생태, 촉감과 식감, 냄새와 맛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싫다! 장어는 내게 그저 물에 사는 뱀과 다름 아니다. 세상 모든 생명은 사랑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건만, 나는 왜 이다지도 장어가 싫을까. 지극히 사적이고 편견에 절은 이유를 열거해 보기로 한다.
장어의 생김이 불편하다. 미끈하고 날렵한 몸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갈치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길지만 둥글고 통통한 그 몸이 징그럽다. 그 몸이 강과 바다의 물살을 헤치는 상상을 하면 온몸의 털이 솟는다. 헤엄칠 때 몸 끝이 휘어지는 모습과 구울 때 기러기 모양으로 오그라드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 장어의 촉감은 끔찍하다. 회사 생활을 막 시작한 무렵, 장어구이 집으로 회식을 가게 되었는데 하필 주인이 어항 속 장어를 잡아 신선도를 체크하라며 자랑스럽게 코앞에 들이밀었다. 위협을 느낀 장어는 온몸으로 점액질을 뿜어대고, 그 와중에 남자 선배 하나가 어이없이 정액 운운하며 내 손을 장어에 가져다 대는 게 아닌가. 잠깐 닿은 장어의 끈적거리고 미끈거리는 촉감은 선배라는 작자의 역겨운 비유와 섞여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다.
장어의 냄새가 거북하다. 보통 싫어하는 음식이나 식재료에서 나는 냄새는 비린내다. 피비린내 거나 흙비린내거나 물비린내거나 풀비린내다. 그런데 어째 이 녀석은 피, 흙, 물 삼단 콤보가 한꺼번에 훅 치고 콧속으로 들어온다. 산초나 생강, 깻잎 같은 강한 양념과 밑간으로 덮었다고 한들 내 코는 절대 못 속인다.
먹장어의 생태가 괴롭다.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죽은 생선이나 바다 동물의 살을 쪽쪽 빨아먹고 사는 먹장어의 생태와 흡반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몸서리를 치면서 그걸 끝까지 본 이유는 싫어하는 이유를 분명히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먹장어에게도 온갖 죽은 동물을 먹는 내 식생활과 내 입이 그렇게 보이겠지.
장어의 식감이 못마땅하다. 누가 장어를 쫄깃쫄깃 쫀득쫀득 탱글탱글하다고 했는가. 나는 아직 일생을 통틀어 장어를 싫어하는 주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 좋다는 장어를 어떻게든 내게 한 입이라도 먹여보려고 어린 시절에는 나의 가족들이, 좀 커서는 친구와 동료들이,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의 가족들이 노오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러기 모양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훅 끼쳐오는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코를 쥔 채 간신히 입에 넣었건만, 물컹하고 눅진 식감 때문에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다가 매번 몰래 뱉어 버리고 말았다.
장어의 맛이 언짢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스며 나오는 장어 기름은 비린 냄새와 합쳐져 몹시 느끼하다. 맥앤치즈에 까르보나라, 시카고피자를 한 번에 먹을 수 있을 만큼 느끼한 음식을 잘 먹는 나지만, 왜인지 장어의 느끼함은 참기가 힘들다.
이렇게 싫어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써놓고 보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속이 다 시원하고 없던 기운이 솟아난다. 그동안 입 짧은 사람, 별난 사람, 까다로운 사람, 편식하는 사람, 촌스러운 사람이 될까 봐 장어를 싫어하는 마음을 마음껏 내보이지 못했으니까.
스페인 화가 에바 알머슨의 그림책 <모두 식탁으로 모여 봐!>에는 여섯 어린이들이 등장해 자신의 식습관을 저마다의 목소리로 노래한다. 음식을 향한 탐구 정신으로 개구리 뒷다리나 메뚜기 튀김에 도전하는 탐식(探食)가, 평소에는 소심하지만 음식 앞에서는 용감해져서 놀랄 만큼 많이 먹는 대식가, 밭에서 자란 흑토마토와 유기농 요구르트만 먹는 미식가, 구름은 솜사탕으로 땅은 캐러멜로 보이는 디저트 러버, 햄버거와 감자튀김에 탄산음료를 곁들일 줄 아는 패스트푸드 애호가, 그리고 생선 냄비 앞에서 ‘코를 비틀어 쥐고’ 고개를 돌린, 나와 닮은꼴의 대망의 편식가!
편식가의 심정을 선 하나, 점 하나로 생생하게 살린 일러스트도 반갑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건 편식의 이유를 구구절절이 열거한 글이었다. 특정 음식을 왜 좋아하고 왜 싫어하는지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 이 책은 누군가의 식습관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것을 가치 판단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아서 좋다.
‘편식’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특정한 음식만을 가려 즐겨 먹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 즐겨 먹는 것보다는 싫어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 포커스를 맞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식습관을 교정하려고 든다. 편식이 나쁜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편식은 개인의 취향을 알아가고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호와 오 사이 어딘가에서 안정적으로 발 디딜 자리를 찾게 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나의 취향과 호오를 다른 이에게 강요하지 않게 되니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육식파도 채식파도, 부먹파도 찍먹파도, 대식가도 소식가도, 잡식가도 미식가도 함께 둘러앉아 서로를 향한 ‘참견 없이! 잔소리 없이! 충고 없이! 강요 없이! 권유 없이!’ 싫어할 자유가 허락되는, 각자의 취향대로 먹는 식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 나는 정기적으로 장어를 굽는다. 우리 집 장어 러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장 맛있는 상태에서 먹을 수 있도록 프라이팬에서 에어프라이어로, 다시 프라이팬으로 옮겨 가며 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새우와 전복도 각각 버터에 소금에 양껏 굽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싫어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며 평화로운 식사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