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
2025년 7월 3일, 목요일 (GMT+2)파리
글작업은 어느정도 정돈이 된 듯 싶어 오랜만에 탕프레에 가서 라면과 버섯 등의 식재료를 사러 나갔다. 커피, 오렌지쥬스, 크로아상을 시키고는 sns 계정에서 나머지 업무를 정리했다. 드디어 밤낮이 제대로 돌아왔다. 비둘기 때문에 치운 발코니 아래 바닥을 쓸어냈다. 오늘은 덜 더워서 참 다행이다.
어제는 이벤트 참여자 대상으로 쓸 카드와 선물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고 준비했다. 퐁피두 근처의 문구점에 가서 영상 촬영도 하고, 콜라맛 슬러시도 먹었다. 이제는 정말 가계부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한다.
올겨울부터 인터넷 박스 미설치를 이유로 주간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면서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의 폭이 줄어들면서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고 새벽에 일하던 습관이 굳어져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냉장고가 고장나서 신선한 식품 보관이 불간으해져 몇달간 라면을 거의 주식으로 먹으니 피부의 탄력이 확 사라졌다.
오늘 아침부터는 밤과 낮의 패턴이 완전히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왔으니 좀더 사람답게 살고싶어진다. 상반기 동안 난 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당장 일을 하기에는 피아노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상황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몸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일로 어쩌면 도피했다고 보는게 맞을지도 모른다.
중노동 대신 그림을 그리고, 그러다보니 전시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이사를 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캐릭터 일러스트 웹페이지를 만들고 브런치에는 에세이 여러개를 썼다. 그 어떤 것도 실질적인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이 과정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는 어떤 에너지로 이끌었는지, 친구의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친구 집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중이였고, 겸사겸사 그 정리와 여러가지를 도와주면서 체력이 많이 바닥난 상태였다. 한국 전시 진행 중에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패닉의 전조 증상인걸까 하고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내 생각엔 카페인 과다복용 증상인 듯 싶다. 웬만해서는 우울증까지 가지 않는 희안한 정신체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것도 신기하다. 아마 이 모든 것들이 육체적인 고장으로 대체되지 않았나 싶다. 살다보면 한번씩 겪는 큰 사고를 어릴때 겪고는 계속 그 불편함을 인지하고 살면서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브런치를 통해 멤버십이나 출판 제안 같은 외부적 성과를 기대하기엔, 지금으로선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무리한 속도나 빈도를 유지하기보다,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정리하고, 그에 따라 목표를 조정하기로 했다. 이제는 방향이 명확하다. 글 연재와 물밑작업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나의 리듬과 집중력을 보존하는 쪽이 더 우선이다.
무튼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것들을 이제는 조율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글도 거의 구축을 했고, 나의 사생활과 현실에 계속해서 집착하던 사람들을 제대로 경계해둬서 더이상 신경쓸 일도 없어진 듯 싶다. 시작한지 몇달 되지도 않은 채로 전시를 이행하면서 그래도 너무 겉돌고 풀 밖의 무명으로만 남지 않도록,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계속 쌓아간다는 제동장치라도 걸기 위해 나와 마음이 맞는 작가님들과의 교류 및 소통을 통해 구축을 했다. 초반의 100명 팔로워에서 300명으로 넘어갈 때가 정말 난감해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초반의 마인드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먼저 찾아가 좋아요를 누르는 것 자체만으로 응원이 되고 힘이 되는 시기는 지났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할 말도, 댓글 쓸 여력도 없는데 억지로 뭔가를 짜낸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워졌다.
통상적으로 이렇게 꾸준한 작업을 6개월 하면 노출이 늘어나고 구글 검색도 쉬워진다는 것을 몰랐다. 이번달 중순부터는 일러스트 계정 자체가 검색에 노출이 되기 시작할 거다. 일러스트로 만들어 올린 것들의 가닥이 생기니 앞으로 다른 분야는 어떻게 키워나갈지 감이 생긴다. 글계정 같은 경우 텍스트 기반인 스레드에서 활발하지만, 직관적으로 사진을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가 있어서 스레드는 줄이고 인스타그램을 관리하는 방향을 잡았다.
글과 그림이 참 사람 인생을 좀먹는게, 아무리 상업적이고 깊이가 얕다고 하더라도 한번 시작하면 그 흐름을 끊는 것이 쉽지 않아서 모든 현실을 등한시하게 된다. 피아노 연습은 루틴을 짤 수 있고 주기적으로 쉬어줘야하며, 내 몸의 리듬과 같이 가기에 건강할수록 더 잘되지만, 창작의 영역은 그 반대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못쓰면 트집이 잡혀 법원으로 보내겠다는 통보가 오고 겁을 주는 프랑스사회에서 내 할일에 집중을 하는 것은 이런 불상사를 만들어낸다. 생각보다 알찬 하루다. 새벽부터 점심 직전 시간까지는 글과 그림 작업을, 그 이후에는 피아노 잠깐 치고 밥 먹고 집안일 신경쓰다가 곯아떨어지는 일상의 반복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게으른 사람의 생산성 없는 하루인 양 무언가 얻은게 없는 것만 같다. 이사 이후 한달간은 그러했다. 워낙 정리할 것들도 많았으니...
도르도뉴로 간 피아노를 올해엔 연주를 위해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아직 성 관리인에게 연락 못했다. 내가 갖춘 기반이 없어서. 이젠 음식 관련된 포스팅을 할 단계까지 왔고, 그 때부터는 손그림과 정보성이 담긴 글을 연재하게 될 것이므로 현재 나의 삶도 건강과 밀접해야하며 식재료 위한 가게지출도 같이 병행해야만 한다.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착각에 기대지 않겠다. 대신, 구체적인 작은 루틴으로 이끌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