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간 23:43
막 현타가오는데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닥 새로운 감정이 아닌가바
그냥 이거저거 보고 겪으면서
이젠 그 어떤 성취와 실패담을 봐도
낯설음이 없달까
저기 누구가 엄청난 학교에 들어가고
저기 누구가 세계 1위에
저기 누구가 어마어마한 남편이고
저기 누구가 암에 걸리고
저기 누구가 사내정치로 좋은 이력임에도 공황이오고
어느날 들려오는 부고 메세지 등
“나”라는 의미도 지워지는 것 같고
권태라기보다는
<할만큼 했다>
어제 잠들기전에
기도를 했다.
브런치에서 그리스로마 신화와 고찰을 연재 중이신
야담 작가님의 최신 글을 읽었는데
신은 인간의 소원을 말 그대류 들어주지만
인간이 말하는 소원은 결핍과 두려움의 그림자로
소원은 욕망의 구체화이며
동시에 진심을 말하지 못한 인간의 고백이란 대목에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피아노.
콩쿨도, 좋은 연주도, 그토록 원했던 정기적인 수입과 레슨을 받는 것도… 다 내 두려움의 그림자였던 것일까.
난 무엇이 결핍되었고 무엇이 두려웠던걸까.
때때로 sns에 업로드되는 수많은 음악인들의 연주영상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이
꼭 내 과거의 내 모습을 비추는 것만 같았다.
신은
인간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고 소원을 들어만 줌으로서
인간의 자기 인식을 하고 그 욕망의 결과가 무엇을 낳는지 직접 보게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라 했다.
소원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함정이라고…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비는 염원.
그 소원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직면하게 한다는 것.
그럼 소원따위 빌어서 둘러가지 말고 당장 직면하면 되는거 아닌가,
지금 나의 소원은 뭘까,
생각해봤다.
그만 고생하는거.
귀국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몇년 전에는 귀국이 현실적인 선택이고 체류가 소원이였는데, 지금으로서는 귀국은 회피고 체류는 직면이다.
피곤하고 지친 신체적 한계를 직시하는 것
체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서류를 해결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그냥 남은 과제를 하는 것이 직면하는 것이다,
내가 벌린 일의 파장이 커서 여기저기서 공모전의 테마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고 있다.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내가 정말 원했던 것과 그것이 두려움에 기인한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 해야하는 일인지 선명하게 바라본다.
돈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니 돈 안되면 거들떠보지도 말고 내 페이스 찾자, 하지만 쿨한 척 하지말고 원했던 일만큼은 지속을 하자. 느리게 가도 언젠가는 식을 열기겠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내 선택에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