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2 2025년 7월 9일, 수요일 (GMT+2)
파리 시간
여러 번의 실패와 억울한 경험들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 순간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나는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 생각 속에 스스로를 가두며,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살아갔을 테니까.
그랬다면 모든 대화는 늘 “나는 말이야” “난 그런데”로 흘러갔겠지. 끝도 없이 비위를 맞춰야 하는, 주변을 지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스스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재능 하나를 끌어안고는, 불쾌할 정도로 “팩트”를 앞세우며 타인의 우수함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였겠지.
아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애였다. 다른 세상을 거의 겪어보지 못했기에, 좁디좁은 자기 세계 안에 고립된 채 “내가 했으면 너보다는 훨씬 잘했을 거야” 같은 할아버지식 옹고집을 꽁꽁 싸매고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주었는지도 모른 채, 자기연민에 빠져 있던 그 모습이 나조차도 보기 싫어졌고, 결국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그러고도 나는, 실체도 불분명한 존재에 대해 말같지 않은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을 것이다.
고작 자기 선택에 불과한 ‘포기’에 장엄한 서사를 부여하며, 약에 기대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에서는 삶이나 사람보다 음악이 더 중요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철저히 그 반대라고 믿는다. 삶이 먼저고, 사람이 중요하다. 그런 과도한 문학적 장치로 대중을 선동하는 건 누구에게든 씌울 수 있는 브랜딩이고 마케팅이다.
3년 전 겨울, “크리스마스니 한번 나오라”는 말에 파리 외곽의 한 식당으로 나갔다. 당시는 그림을 개인 계정에 취미로 올리던 때라, 밖에 내놓을 이유를 굳이 찾지 않았다. 조금씩 몰스킨 노트에 그려가던 것들을 링링이에게 보여줬더니, 아빠에게도 보여드리라고 했다.
보자마자 그림을 왜 안그리냐, 하시기에 전공이 아니기도 하고, 제대로 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사실 난 큰 아틀리에에서 거대한 작업을 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굳이 한다면 그냥 디자인 계열을 취미로... 라며 얼버무렸더니
"일러스트는 쉬운줄 아냐?"
대뜸 말씀하시면서
"겸손한 척 하지마."
라고 딱 잡아떼셨다.
아마 그의 눈에는, 내가 발도 못 담근 주제에
“나는 고작 이 정도야”라며 스스로 한계를 긋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을 것이다. 비판받는 게 두려워, 피드백 하나에도 감지덕지하던 내 모습도 못마땅했을지 모른다. 기초가 없고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잇달아 했지만, 그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모르면 작가님 따라다니면서 묻고, 못배워서 못한다 소리 하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그리라고, 꼭, "즐겨도 된다" 라고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허락을 해주신 것 같았다.
성격이 강한 분이라 작가님들과 마찰이 잦았지만, 늘 악의는 없었고, 늘 반어법을 쓰셨다. 오히려 너무 진심이셨기에 — 아버지와 비슷한 면이 있어 노여움을 타지 않았다. 그만큼 격려를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딸에게는 훨씬 더 엄했던 사람이었다.
"널 표현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면 안돼.
내가 이런말 잘 안하는데,
넌 성공할거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듬해인 올해, 내 목표는 아저씨의 말씀대로, 하고싶은 모든 표현을 아끼지 않고 감추지 않고 표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 하고 있다. 힘들면 힘들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억울하면 억울하다, 행복하면 행복하다... 피아노 치고 싶다...
더 낮은 위치여도, 최고가 아니어도, 시간과 현실에 쫓겨 갖춘 게 없어도 — 스스로 쌓은 인맥과 무대는 전부 실력이다. 누가 그냥 차려준 자리가 아니기에, 아쉽다면 다시 태어나서 또 하면 된다. 외국어도 되고, 피아노도 더 잘할 수 있다. 어디든 찾아가서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요즘 피아노 곡을 작은 곡들부터, 그림 그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마음으로, 연주를 위한 연습이 아닌 연구를 위한 연습을 하고싶어진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연주 말이다.
어차피 늦었다. 교수님이 아무리 칭찬해주시고 괜찮다고 하셔도 객관적으로 때를 놓쳤고, 시기도 늦춰지고 있다.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할 수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연소 타이틀보다 어려운 것은 끝까지 하는 것이다.
몇년 전 신동이라 불리던 학생의 집에 작은 선생으로 - 그러니까 연습을 도와주는 선생으- 들어가 레슨을 했던 적이 있다. 학생의 어머니는 타국에서 낯선 언어와 절차를 버텨내며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음악원에 등록했고, 영어가 되는 선생님과의 소통을 하며 다른 아이의 악기 반주까지 해냈다. 콩쿠르를 위해 국경까지 넘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요즘은 "잘"한다는 것보다 "잘"듣는 것, 더 깊게 보는 것, 그리고 내 연주를 사랑하면서 내 몸의 역량을 알아가는 것에 더 집중하고 싶다.
이 글은 제가 실제로 겪고 느낀 것들이에요, 제발 부탁이니 강의자료나 자신의 수업 홍보를 위한 문구와 사례로 쓰지 말아주세요. 지속적으로 노출시킬 것이고 날짜와 시간도 모두 적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