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늘 나에게 무서운 곳이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기회는 이미 누군가의 손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고,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는 늘 약간의 거리감 속에 있었다. 전시 제안이 서울에서 왔을 때, 망설임은 당연했다. 홍보라는 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그 메시지 안에는 진심이 있었다.
나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었고, 현장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여러 차례 “작가님, 마음 쓰지 마세요.”, “다음엔 꼭 함께하고 싶어요.” 정말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내가 늘 느껴왔던 서울의 차가움과 달리, 처음으로 누군가 손 내밀어주는 기분을 느꼈다. 한국어가,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서울에서, 이런 제안이 오다니...
전시 기획의 의도는 "거북이 처럼 천천히 걷는 사람들" 이였다. <어쩌다가 드로잉잉>, <저쩌다가 드로잉잉>. 나처럼 마음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전시인 것 같았다. 이전 참여 작가님들을 보니, 수준급의 프로 작가님부터 초보 작가, 학생까지 다양했다.
그림을 직접 설치할 수 없었기에, 대신 한국에 있는 친한 디자이너 언니에게 부탁을 하기로 했다. 작가가 그 자리에 없어도 누군가 내 작업을 진심으로 다뤄줄지, 그런 의심이 계속 생겼다. 들어왔던 소문도 있어서다.
그 시기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파리 까페 전시를 마친 직후, 누군가의 실수로 내 작품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에서는 휴대폰 통신사의 착오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은행의 실수로 행정 문제도 떠안고 있었고, 동시에 집을 정리하고 이사까지 해야 했다.
그 상황에 A 언니는 내 대신 인쇄소를 찾아다니고, 무너져가는 일정 속에서도 메모 하나하나를 챙겨주었다. (언니는 일러스트 세계관 안의 캐릭터 포메라니안 "애니")
내가 보내준 파일의 밀리미터 단위까지 맞추며, 작품의 손상이 생기지 않도록 밤늦게까지 조율했다.
문제가 생기면 나보다 더 먼저 당황하고 미안해하며 연락을 줬다.
빠듯한 스케쥴 안에 시간안에 해결해야하는 일이라, 전시 시작 직전에 겨우 작품과 굿즈들을 받을 수 있었다. 언니는 사는 곳 서울 외곽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폼보드라는 특성상 파손이 쉽다며 파주까지 가서 직접 설치했다.
그 와중에 나는 기획자님께, 미디어 송출되는 작품이 영상이여도 되냐고 여쭤봤다. 당연히 된다고 하셨고, 그렇게 고양이가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릴스영상을 보냈다.
사실 좀 더 큰 사이즈로 만들어 좋은 화질의 파일로 보내고 싶었으나,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았다.
설치는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초록색 벽면은 내 작업의 주된 컨셉과는 조금 어긋나는 듯해 처음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내가 참여한 첫 단체전이었고, 특히 페어의 성격을 띤 행사였기 때문에
제한된 예산과 물리적 제약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값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치 과정에서 A 언니의 손이 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줄자와 마스킹 테이프를 챙겨와, 작품과 벽 사이 간격을 치밀하게 재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작업들이 배치되도록 애쓰는 모습은 감탄 그 자체였다.
나는 비전공자이고, 이런 전시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작가’였기에 현장에서는 자꾸만 작아지고,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그림만 그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주 예리하고 섬세한 한 끗 차이에 전문성과 어설픔이 나뉘어진다.
나는 거기 없었지만, 나의 손끝에서 나온 무언가는 누군가의 손을 거쳐 공간 속에 자리 잡았다.
서울이 그렇게, 조금은 덜 무서운 도시가 되었다.
노란색 포스트잇은 기획자님이 쓰신 것...
무료엽서라는 것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따로 부탁드린 것인데, 실시간으로 디엠을 확인하시고 부탁을 들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