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5개월이 넘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자격지심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적어도 천명의 팔로워가 넘는 다른 작가님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원래는 가벼운 선과 수채화 느낌의 채색으로 인스타툰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과 어우러지는 글씨가 작지 않아야 했고, 캐릭터로 굿즈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자연히 그림 자체로도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아야 했고, 그래서 방향성을 정하고 그림체를 굳히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
처음엔 자유롭게 시작했지만, 다른 작가님들의 작업 방식을 보며 디지털 작업의 특성을 배워나갔다. 두 번의 전시를 통해 프린팅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 과정도 익혔다. 예를 들어, 저장 시 PDF로 변환하는 법, 벡터화, 어도비 일러스트 사용, 종이 선택, 인쇄 비용, 그림이 잘리지 않게 프레임을 잡는 법, 무액자와 액자, 폼보드 선택 등. 그림을 거는 장소와의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그 그림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를 두는지까지 차차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더욱 준비된 태도를 증명하려면, 때로는 많이 혼나고 깨지며 나아가야 했다. 설령 그것이 무차별적인 비난이라 해도, ‘왜 나의 작업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은 결국 창작자의 세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실패조차도 실패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많이 모르다 보니, 마치 “이래서는 안 된다”는 보이지 않는 법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수많은 의견 앞에서 불안해졌고, 다른 작가님들만큼의 기량을 보여줘야만 '성의 있는 태도'라고 여겼다. 내 작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부족했기에, 점점 더 ‘그림 안에 무언가를 꽉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버렸다.
초반에 구상했던 그림 몇 장은 지금도 프로크리에이트 앱에 남아 있다. 한때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가 모두 보관처리했던 이유는, 업로드 시 화면에서 어떻게 보일지가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림이 점점 작아지고, 눈에 띄기 위해 색이 더 강렬하고 화려해지거나, 선이 똑 떨어지는 식으로 변화했다. 어느 순간부터, 스크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그 감정은, 서울 압구정에서 열렸던 단체전 〈빈칸〉에 참여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각자의 세계관을 따라 자유롭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려낸 작품들 사이에서, 나는 ‘SNS에 어울리도록’ 갖춰진 내 그림이 유독 보잘것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래 내가 그리고 싶었던 이야기와 감정을 담은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마음속으로 멋지다고 느꼈던 작가님들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 아, 진심을 담은 그림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구나. 그것이 서툴더라도,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면.......
물론 예쁘게 꽉 채운 그림도 좋다. 그 작업들 역시 마음을 담아 정성껏 그린 것이다. 어차피 내가 그리고자 하는 캐릭터와 세계관은 변하지 않기에, 앞으로는 다양한 그림체로 자유롭게 구현해보고 싶다. 조회수나 좋아요 같은 ‘노출’의 압박으로부터는 조금씩 거리를 두려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구색이 맞지 않아 올리지 못했던 그림들을, 브런치에는 보다 차분한 호흡으로 풀어볼 계획이다. 이야기가 긴 경우엔 사담처럼, 이미 짜여진 스토리가 있는 그림은 서사 형식으로 정리해서.
연초에 올렸던 그림은 오일파스텔 느낌이었지만, 사실은 수채화로 업로드할 생각이었다. 다만 그때는 확신이 없어서, 결국 다시 그리고 나서야 이 그림으로 스레드를 시작했다. 비슷한 그림들을 종종 보지만, 사람들 생각이야 다 비슷비슷한 법이니, 그저 우연이라 여긴다.
이 그림은 독일에 놀러 온 애니와 함께 부엌에서 요리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린 것이다. 실제로 저런 구조의 독일식 부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