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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Jul 14. 2023

밀라노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제학교는 포기 못해!

 "알았어. 한국에 들어가기 싫다는데 어쩌겠어. 나 혼자 애들 데리고 돌아갈 수도 없지.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밀라노에서 살겠다고 했을 ,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아이들은 다니던 국제학교를 계속 다닐  있게  .

  다른 회사로 이직할 기회가 있을 때에도 남편이 계속  회사를 다녔던 이유는 바로 주재원으로 나올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게 유럽으로 발령 나서 아이들이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게 바로 주재원 가족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큰 애들이 이제 제법 영어도 능숙해지고 이곳 학교에 익숙해져 있는데 학교를 옮기는 일은 결단코 안된다.  애가 year7, 둘째가 year6인데 이탈리아 공립학교로 옮기는  나에게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밀라노에서 4년째 살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물론  역시 이탈리아어도  모르던 데다가 이제  middle school 과정에 들어선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행히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다니는 학교를 옮기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 내가 남편이 밀라노에서 눌러살아보자고 했을 때 순순히 동의한 데에는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계속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남편이 회사를 관두고 이곳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처음에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다 진짜 한국에 들어가 사표를 내고 한국의 아파트까지 매매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다 보니 이제는 말린다고 한들  말이 씨알도  먹힐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남편 경력이 얼만데 우리 다섯 식구 굶는 일이 있을쏘냐 싶었다. 런데 거짓말처럼 바로   , 코로나가 터졌다.

 불행  다행인 것은 남편이 바르셀로나에서 무인숙박업을 하려고 계약서를 쓰기 일주일 전에 국가 봉쇄로 무효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행한 일은 2 동안 우리는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쓰기만 했다는 것이다.


 어찌어찌 코로나 봉쇄도 끝나고 남편은 예전 회사 이탈리아 직원들과 작은 사업체를 차리고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주재원으로 있을 때처럼 꼬박꼬박 임금이 나오고 때 되면 쇼핑하고 좋은 식당을 가고 여행을 다니는 일은 이제 없다. 주재원이 아닌 교민으로 살면서 아이들을 년 13,000유로 이상 드는 국제학교를 보내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다. 게다가 나는 아이가 하나도 아닌 셋이 아닌가. 일 년에 세 아이의 학비만 4만 유로가 넘게 든다. 그리고 집 렌트비용이 있다. 월 2,500유로에 공과금까지 합치면 평균 월 3,000유로가 든다. 다섯 식구의 식비는 또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이들이 한창 성장기인지라 우리 집은 쌀도 슈퍼에서 사지 않고 정미소에 가서 20kg 포대로 산다. 그리고 과일과 채소는 주말 토요일마다 열리는 청과물도매시장에 가서 박스로 사다 둔다.  남편과 나는 우리를 위해 옷 한 벌 쇼핑한 적이 없다.


 빛 좋은 개살구가 따로 없다. 이쯤 되니, 차라리 한국으로 가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슬며시 든다. 그래서 슬쩍 남편 마음을 떠보았다.

" 어때? 회사에 다녔을 때랑 지금 사업하는 거랑 뭐가 더 좋아? "

" 사실 회사 다닐 때에는 어떻게든 월급이 그냥 나오니까 마음은 편했지, 근데 몸이 너무 안 좋아지니까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다 쓸데없는 일 같으니까 의욕이 없었어. 근데 지금은 항상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지. 그래도 몸이 안 아프니까 좋아. 돈 없는 건 걱정되지만 그래도 아직 빈털터리는 아니니까 "


 진짜 그랬다. 회사에서 12시간씩 근무했을  남편은 고질적으로 허리가 아팠고 항상 두통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허리 통증과 두통 모두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느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물을  없었는데 이제는 꼼꼼히 학교 주간 메일을 확인하고 학부모 상담이나 아이들 연극이 있을 때면 꼬박꼬박 참석한다.


 한국에 돌아가는 게 어떨까 하고 물어보려던  마음은 그저 묻어두어야겠다. 석 달에 한 번씩 다음 텀 수업료 고지메일이 올 때마다 한숨이 나긴 하지만, 남편말대로 아직은 빈털터리가 아니니까 조금 더 버텨보자는 심산이다. 해외에서 국제학교를 보내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학비 걱정은 안 하겠지 싶겠지만, 나처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람도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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