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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Jul 17. 2023

밀라노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행말고 유럽에서 산다는건 어떤거야?

"밀라노에서 살면 너무 좋으시겠어요."


"이탈리아 너무 좋잖아요. 음식도 맛있고 여행도 많이 다니실 수 있겠어요"


 십여 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밀라노에서 살고 있다고 하면 십중팔구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유럽을 좋아하는데 그 와중에 이탈리아라니, 일생에 한번 누구나 한번쯤은 오고 싶어하는 나라 아닌가. 한 때는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반응에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는 주제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뽐내보고 싶기도 했다.


 Bella Italia del Mondo.

그렇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대한민국은 한국사람들에게만 통할 뿐,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는 바로 이탈리아 아닐까. 적어도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 대부분은 이탈리아에서 겪은 에피소드는 다를지언정 이탈리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좋아할 것이다. 이곳의 뚜렷한 사계절도 좋고, 지역별로 계절별로 풍부하고 맛난 먹거리며 그리고 산, 바다, 호수 어디든 카메라를 들게 할 정도로 멋진 자연도 참 많다. 그뿐인가 어딜가도 입이 떡 벌어질정도의 박물관, 성당, 미술관은 어떤가. 먹고 또 먹어도 보고 또 봐도 더 먹고 더 봐야 하는게 천지로 널려있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이다.  물론 어떠한 경험-소매치기같은 경험은 이런 객관적인 요소들을 무용지물로 만든다-을 겪느냐는 주관적인 요소는 제외하자.

 오죽하면 멋부리는 게 일상인 이탈리안 남자는 세계 최고의 패셔니스트로 엄지척하고 쉽게 흥분하는 다혈질 성정은 정열적인 것으로 포장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여기에 눌러 산다는 것은  다른 얘기이다. 아니, 어쩌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눌러 산다는 것은 그게 어느 나라든 여행과는 결이 를 것이다.

 지난 주 드디어 신청서류를 접수하고 4개월 만에 10년짜리 소쬬르노(permesso di soggiorno lungo)가 내 손에 들어왔다. 당연히 아이들도 10년일 줄 알았는데 성년 이전의 경우는 5년이 최대여서 5년 뒤 아이들 체류허가증을 다시 신청해야 한다. 주재원으로 나오는 경우 보통 2년마다 갱신해야 하므로 갱신기간이 다가올 때면 은근히 신경쓰였는데 이렇게 10년 장기 거주 비자를 받으니 속이 시원하다. 어쨌든 이곳에서 살기위한 큰 허들 하나는 해결한 셈이다.


 여행객이 아닌 거주민으로의 위치변경은 이곳의 사회 시스템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소한 예를 들어보자면, 쓰레기를 어떻게 분류해서 무슨 요일에 버려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이사 후 꼬뮤네-동사무소-에 주소등록을 하고 지역 보건소에 등록을 해서 주치의를 배정받아야한다. 서류를 떼어야 하는 경우는 관공서를 방문해야 하는 일도 생기겠지. 주민세는 얼마를 언제 내야하는 건지 taro라고 불리우는 오물세도 내야한다는 것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 조차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 되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남편의 주재원 신분으로 누렸던 편리함에 익숙해져 10여년이 넘게 이곳에 살면서도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언어의 장벽 때문에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한번에 해결하지 못하고 두번 세번씩 다시 해야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 여기서 눌러 살기로 한 이상 더 이상 여행자의 자세로 살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를 제대로, 열심히  보기로 마음을 먹고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어를 배울  있는 꼬뮤네 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이 사회에 깊숙히 들어가기 위한 이런 노력들은 예상 외의 난간에 부딪히기도 하고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결과만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와 내 남편은 때때로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건가 싶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사소한 일을 여러번 해야하는 데에 초라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여태껏 한쪽 발만 담그고 지냈던  태도를 고쳐먹기로 마음 으니 늘 똑같던 일상에 활력이 생긴 기분이다. 늘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깊게 두지 않으려 했던 태도가 사라지고 무엇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아이들 키우고 집안 살림하는 것이 전부였던 내 일상의 범주가 넓어졌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할 일 없이 부유하던 그 시간을 이태리어를 읽히는 것으로 채우고 있다.

 10년짜리 체류허가증을 받고나자, 이제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라는 기분이 확실하게 든다. 대학교 합격 후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던 때처럼,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이 챕터는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채워나가고 싶다. 나머지 한 쪽 발 마저 옮겨 두 발 굳건하게 이 곳에 서 있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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