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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카-마테라2

by 불친절한 은자씨

다음 날, 이제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마테라의 일출을 보고가야 후회가 없을 것 같은 마음이었는지 눈이 저절로 뜨였다. 아침잠 없는 남편도 이미 일어나 앉아 테라스에서 풍광을 즐기고 있다. 굳이 자고 있는 아이들은 깨우지 말고 우리 둘이 설렁설렁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로 한다. 아침의 마테라는 지난 밤 두꺼웠던 화장을 지운 듯 큼지막한 암석덩어리들을 그저 툭툭 모아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둘러보니 이 곳이 그다지 넓지 않은 곳이고 평평한 곳이 드물어 건물을 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한가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보다 성당이 훨씬 많았다. 직접 이 지역을 와 보면 지형적으로 당연히 외부와 고립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있다. 마을 바로 앞이 골짜기가 있고 마을은 높은 지내에 위치해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큰 규모의 성당보다는 작은 성당이 곳곳에 만들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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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남편과 산책한 마테라의 골목과 전경

마테라는 사실 알려진 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대중에 알려졌는데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마을을 형성하기가 어려웠고,일부 빈민들만이 산기슭 등지의 동굴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기나 수도가 닿기에 너무 고립되어 있어 이 지역을 개발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이탈리아 정부에서도 이 지역을 아예 폐쇄하고 거주민들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 다시 이 일대의 역사적 가치가 조명되면서 관심이 생겨나고 이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관광지로 탈바꿈하기 위해 전기, 수도 등 사회기반 시설은 물론이고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는 상태로 숙수와 식당을 운영하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passion of crist라는 영화의 배경으로 알려지면서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9년에 이 마테라 Sassi 지역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묵었던 숙소에서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가보니 그 옛날 이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있는게 아닌가. 흑백 사진 속 그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니 거칠고 고된 그들의 삶이 쉽게 그려지고 우리나라의 한국전쟁 이후의 모습과 겹쳐지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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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붙여있던 과거 개발 전 마테라의 모습

체크아웃을 하면서 마테라의 전경을 잘 볼 수 있는 맞은 편 골짜기 넘어를 가보기로 한다. Mursia Timone 공원으로 네비에 찍고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두 언덕 사이에 골짜기가 있으니 언덕 정상은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워낙 바람이 세니 움직이지않고 가만히 서 있는것이 어려웠다. 나무들은 당연히 없고 야생화나 키 작은 선인장과 식물들이 바위 틈 사이사이에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큰 나무 한 그루 없이 돌덩이들과 하늘밖에 없는 이곳이 지구라기보다는 어디 외계행성 속에 와 있는 기분이다.

맞은편 마테라의 전경을 보려는 나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이런 곳에도 산책로가 만들었을까 싶다. 너무 깔끔한 산책로를 걸으며 벨베데레-전망대 지점에 도착해서 하염없이 맞은편 마테라를 바라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마테라는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속 미래의 배경처럼 너무나 가짜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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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사이에 중간 중간 많이 보이는 검은 원이 과거 빈민들이 살았던 동굴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종교적인 핍박을 피해 거주했다고도 한다.


한참 사진을 찍닫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그 세찬 바람 속에서 할머니 사진을 찍으려고 고군분투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와중에 또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짚고있던 지팡이를 멀리 떨어뜨리고는 선글라스를 꺼내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시고는 포즈를 잡으신다. 할아버지께서도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시면서 아내에게 호응을 한다. 이 모습이 어찌나 인상깊던지 나도 모르게 그분들의 모습을 찍어보았다.

백발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지팡이 짚으시고도 이 언덕까지 올라오는 열정에 놀라웠고 서로를 아름다운 배경 속에 사진에 담으려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행이었지만, 지금도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때문에 마테라의 잔상이 진하게 남아있다. 나는 여행 전의 설레임이 여행을 가게끔 만드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여행 중에서는 어떤 설레임이나 즐거움이 오래 간직되기 보다는 일정을 쫒아다니기에 바쁜 것 같다. 무계획의 여행이라도 어디서 밥을 먹을지 정도는 계획을 해야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 마테라에서 보았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은 여행에서 나에게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행은 이렇게 뜬금없는 지점에서 깨달음을 주는데 그 묘미가 있는게 아닐까. 우리 부부가 몇 십년이 지나서 저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서 있기조차 어렵지만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서로 찍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계속 지닐 수 있기를. 그렇게 서로를 존중하고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는 부부로 지낼 수 있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 마테라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다.


-이탈리아 풀리아, 바실리카 여행기 끝

2023년 4월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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