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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Jun 16. 2023

밀라노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태리어 배우기

 사실 이태리어를 배우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었다. 우리의 신혼 집은 정확히 말하자면 밀라노 동쪽 외곽에 위치한 체르누스코 술 나빌리오라는 곳이었다. 밀라노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30분쯤 떨어져 있다. 다행히 지하철역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밀라노 시내까지는 다녀올 수 있었다. 시내에 나가 멋진 건축물을 보는 것도 한 두달이 지나니 지겨워졌다. 결국 알음알음 알아낸 시내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이탈리아어 학원? 같은 곳이 있다기에 그곳을 다니기로 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되었기에 나는 개인과외를 받기로 했다. 큰 애를 낳기 전까지는 꾸준히 다니며 제법 열심히 했다. 그런데 큰 애를 낳고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살다보니 학원을 다니기가 어려워 결국 그만뒀다. 겨우 ciao, come stai?가 입에 붙을 만했던 시기에 관둬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나 진배없었다. 그렇게 꿀먹은 벙어리로 첫 해외생활을 마무리했더랬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두번 째 밀라노 생활. 그래, 이번에는 다시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이태리 원어민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과외를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선생인을 만나 겨우겨우 A1과정을 마치고 A2 과정까지 공부를 했는데 선생님의 사정으로 1년을 채 못했다. 어영부영 지내다가 그 이후에 코로나까지 터지고 나니 이태리어를 제대로 공부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단지 언어를 배우는 게 어렵기 때문에 여러차례 관뒀다고 말하는 것은 좀 맞지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지만 늘 귀임을 염두에 두고 살았기에 이태리어를 배워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이태리어를 배워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도통 생기질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도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으니 굳이 이태리어를 하지 않아도 애들 키우는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었다. 어차피 내 생활 반경은 아이들 학교와 한국 엄마 모임, 식재료 사는 마트 정도가 다였으니까. 한 발만 이 쪽 세계에 담그고 다른 발은 다른 쪽으로 떨어뜨린 것처럼 적당히 무관심하며 지냈다. 이 사회에 깊숙히 들어가려 하지 않고 떄로는 이방인처럼 또 떄로는 여행객처럼 그렇게 살았다. 이들의 언어를 알지 못하니 관심이 생기는 건 그저 이들의 음식 , 먹거리나 여행지 정도에 국한 되었다. 이탈리안의 생활 방식이나 사회가 공공정책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지도 못하고 또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쩌다 가끔 해야 하는 행정처리 때문에 시청이나 보건소 같은 곳을 방문할 떄면 한국과 달리 전산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느려터진 이들의 프로세스와 항상 문제가 생겨 두번씩 해야하는 깔끔하지 못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불평만 늘 뿐이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지금까지도 나는 내 이름의 계좌조차 없이 남편 카드로 살고 있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나 홀로 방문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얘기이다. 아주 사소한 일 조차 나 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남편이나 에이젼시에서 나 대신 모든 일을 대신해주었다. 그런 삶이 당연한 듯 그렇게 살았다.


 이런 나의 소극적인 해외살이는 남편이 회사를 관두고 이곳에서 눌러 살기로 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바뀌어야만 했다. 바야흐로 이제 나는 주재원 아내가 아닌 이태리 교민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이제 이들의 사회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태리 시스템을 알아야하고 이들의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했다.

 다시 이태리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과외는 제외했다. 두 번을 했지만 결국 중도포기 했기에 그룹으로 할 수 있는 학원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일전에 아는 분이 밀라노 코뮤네-comune 한국으로 치면 시나 구관할 하에 운영하는 외국인을 위한 이태리어 코스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쇠뿔도 단 김에 빼랬다고 구글에 lingua italiani per stranieri 로 검색을 했다.

 각종 어학원과 광고의 글을 걸러내보니 comune.milano.it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사이트를 클릭해서 읽어보니 밀라노 시내 구역 별로 코뮤네에서 운영하는 어학코스가 레벨별로 다양하게 있었다. 60시간에 95유로라니 수업료도 저렴하다. 거기다 애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버스를 타면 바로 갈 수 있는 곳에 지점이 있다. 이건 내가 이태리어를 배우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그렇게 나의 세번째 이태리어 배우기 도전은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2-3시간씩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의 이태리어 배우기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안하면 말고 식이 아닌 이제는 반드시 해야하는 지점에 있다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달라진 마음가짐 만큼 이태리어 실력이 쑥쑥 늘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내 이태리어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lingua di comune-어학원에 처음 들어섰을 때 순간이 기억난다. 결혼 이후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익명의 무리 속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기에 설레이면서도 긴장되었다. 첫 수업은 생각보다 좋았다. 배움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매번 말하기 시간에 내 차례가 되면 입이 바짝 마르고 버벅거리기 일쑤에 한번도 실수없이 말한 날이 없을 정도였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구사할 수 있을 때마다 즐거웠다. 그리고 이 어학원이 아니면 어쩌면 살면서 한번도 만날 수 없는 지점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흥미가 더해졌다. 이곳에서 살면서 내가 만나고 접하는 사람이라고는 고작 아이들 학교와 일부 한국인이 전부였는데 어학원을 다니므로써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태리어를 배우는 사람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국가의 이민자들이 많긴 했지만 태국, 독일처럼 아시아와 같은 EU 지역의 사람들도 제법 되었다.  내가 제일 연장자일거라 생각했던 짐작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태국 아주머니부터 어린아이를 키우는 인도 여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남자 대학생까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배우고 있었다.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그간 무료하게 흘려보낸 시간이 아까웠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살았던 내 삶의 태도를 반성했다. 지난 십여년의 세월 동안 나는 어쩜 이렇게 고여있는 채로 살았던 걸까. 10년 뒤에 그때라도 이태리어를 배웠어야 했다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조금씩 계속 배워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유학이나 이민처럼 자발적인 경우가 아닌 배우자의 해외 발령으로 해외에서 살게 되는 경우 나처럼 언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 꽤 많다. 어차피 몇 년 뒤 다시 귀임을 하기 때문에 굳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어권 국가가 아닌 경우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었기에 여태껏 제대로 배우지 않고 지내왔는데 참 후회스럽다. 얼마간 해외에서 살더라도 그 기간이 짧든 길든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해외 살이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싶다. 내 위치가 여행객의 위치가 아닌 생활인으로 옮겨져 그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해외살이를 시작하는 분들은 조금이라도 언어를 배우시기를, 그래서 더 풍요로운 해외살이를 만끽하시기를.

* 지난 가을부터 공부했던 이탈리아어 책들과 학원에서 준 프린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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