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허가증 신청하기
소위 말하는 체류허가증을 갱신해야 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2년의 유효기간이 지난 4월에 끝났다. 물론 유효기간이 끝나기전에 갱신 신청을 해두었고 6월에 지문을 찍으러 경찰서를 가야한다. 지문을 찍고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면 갱신된 체류허가증이 발급되고 합법적으로 이태리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PERMESSO DI SOGGIORNO. 영어로 PERMITION OF RESIDENCY 이므로 말 그대로 체류/거주 허가라는 의미이다. 아마 EU안에서는 어느 나라든 이 절차는 거의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되는데 발급되는 데 걸리는 기간만 나라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 살고 있는 이탈리아지만, 체류허가증 갱신은 은근 신경쓰이는 일이다. 남편이 주재원으로 있었을 때에는 이런 일을 대신 진행해주는 업체를 통해 진행했는데도 이민청을 방문하는 일은 항상 불편했다. 이런 불편하고 유쾌하지 않은 경험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음이나 네이버에 있는 이탈리아 카페에 올려진 체류허가증 관련한 글은 거의 나와 비슷하다. 이 부분이 이탈리아에서의 삶이 마냥 호의적일 수만은 없는 지점일 것이다. 공공서비스 즉 대민업무에 있어서 공무원들의 업무 방식은 한국 공무원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민청 사무실 안에서 언제가 될 지 모른 채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막상 순서가 되어 창구에 가면 마치 우리를 갑을관계처럼 대하는 이민청 직원들의 고압적이고 무례한 태도가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지난 7여년 동안은 회사라는 울타리가 있어 매번 수월하게 별 문제없이 매번 체류허가증을 갱신했다.
그럼 이쯤에서 이탈리아에서 체류 허가증을 신청하는 과정을 짤막하게 보도록 하자.
1. codice fiscale 신청하기-세무코드인데 이탈리아로 나올 때 받았던 비자가 있으면 세무코드는 모두에게 자동 발급된다. agenzia delle entrate 에 여권을 들고 가서 신청하면 된다.
2. kit 작성하기-우체국에 가서 체류허가증 kit를 구매하고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3. 기타 서류와 사진, marca da bollo를 구매해서 제출-우체국에 제출하는데 반드시 sportello amico 창구가 있는 우체국에서만 가능한다.
이렇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치 않다. 발급받은 비자의 종류-워홀비자냐, 유학비자냐, 노동비자냐 등등-에 따라 첨부해야 하는 서류의 종류가 다르고 kit가 모든 우체국에 상시 구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kit 구하는 것조차 일이다. 그리고 신청서를 제출하고 나서 지문을 찍을 때까지도 2달 정도 기다려야 하고 막상 이민청에 가도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일쑤이다. 하루만에 아니 두 어시간이면 웬만한 일은 다 처리되는 한국의 관공서를 생각한다면 복창 터질 일이다. 그러나 이민청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모든 관공서는 왠만하면 하루만에 일이 처리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따라서 외국인인 내가 이 곳에서 관공서를 가야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답답한 속앓이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의 공무원들과 다르게 이곳의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나를 더 당황시켰다. 그들은 마치 그들이 나에게 큰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고까운 태도로 서류 접수를 처리해주곤 했다. 이들의 이런 안하무인 태도는 비단 외국인인 나뿐만이 아닌 저들 사이에서도 만연했다. 그래서 무사 안일주의다 입으로만 일하는 공무원이라는 소리를 늘상 해대곤 한다. 이마저도 각 provincia 별-우리나라로 치면 도ex.경기도,충청도-로 발급되는데 걸리는 기간이 상이하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국의 경우 주민등록부터 의료보험이나 범죄내역 등 왠만한 국민 신상에 관한 데이터는 모두 전산화가 되어 말 그대로 원스톱으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이탈리아는 그 정도로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체류허가증을 발급받으려면 이민청에 가고 이를 발급받으면 이제 tessera saniteria라고 의료보험 등록을 위해 ASL-지역보건소에 방문해서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COMUNE-동사무소에 개인 인적사항과 주소지 등록을 하고 RESIDENZA를 발급받아야 한다.
사실 이번에 우리는 10년 짜리 PERMESSO DI SOGGIORNO DI LUNGO PERIODO를 신청했다.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여기에서 살기로 남편과 결정했고 이곳에서 5년이상 거주한 경우에는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행업체를 통해 신청을 해 두고 지난 6월 초에 다행히 지문을 찍을 수 있었다. 이제 한 두달 뒤에 받을 수 있겠지. 밀라노 기준으로 신청부터 수령까지 4개월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뭐 이 정도의 과정을 다 마무리하면 이탈리아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외지인으로서, 일종의 이민자로서 산다는 것은 비단 이탈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말 어눌한 외국인이나 이민자들도 정착해서 살려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불편을 겪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한국의 시스템과 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져 이들의 방식이 올드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래저래 다른 말 하는 남의 나라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으니 어쩌겠는가, 여기서 살기로 했으니 받아들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