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집 이야기
무조건 아파트 아니면 안돼. 십년 전처럼 계단밖에 없는 2층 주택말고! 애들 학교도 너무 멀면 안되고 ..아 몰라. 어쨌든 난 아파트 아니면 싫어.
2016년 남편은 밀라노로 먼저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살아갈 집을 서치하기 시작했다. 십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회사 버짓에 맞춰 방 두칸짜리 그것도 다세대 주택 2층에서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리프트가 당연히 없어서 슈퍼에서 장 보고 오면 물이며 정바구니를 들어 나르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모차에 애 실고서 산책나갔다가 잠들면 유모차를 혼자 들고 올라갈 자신이 없어 애가 깰 때까지 계속 동네를 뱅글뱅글 돌았던 기억도 났다.
절대 안돼. 당연히 이번에는 무조건 아파트야.
남편은 하루가 멀다하고 부동산을 드나들며 여러 집을 들여다보았지만, affitto-렌트 용 매물이 많지도 않았고, 애들 학교에서 멀지 않은 지역으로 한정짓다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사진을 엄청 많이 보내더니 너무 호들갑스럽게 카톡을 보낸다.
“자기가 이런 오픈형 주방 갖고 싶댔지? 그리고 욕실에 스파풀 바쓰가 되어있어”
“2층에도 화장실이..."
"어? 무슨 2층? 아파트인데 복층이면 꽤 비쌀텐데 버짓이 돼?"
.......
그제서야 남편이 자초지종을 털어놓는다. 여차저차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에서 우리가 찾는 조건의 아파트가 없단다. 가격이 맞으면 리노베이션이 안되어 있어 너무 오래되었고, 가격이 맞으면 너무 협소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부동산에서 하우스를 보여준다고 해서 그냥 봤는데 본인은 너무 마음에 든단다. 1층 방은 2개지만 2층이 있어 애들 공부방을 2층으로 만들어주면 된단다. 거기다 가든도 있어 바베큐도 해 먹고 애들도 나와서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며 나를 설득했다.
사실, 나는 옷 하나 사는 것도 바느질이며 옷감을 꼼꼼하게 살펴야 하는 일이 번거롭다고 느껴 쇼핑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 그러니 남편이 집을 찾아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 뭐 내가 이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이정도 발품을 팔았으면 오죽 잘 알아서 결정한걸까 싶어 수긍했다.
내가 이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가 기억난다. 마당 문을 열고 몇 발자국 가로 질러 집으로 들어오는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오픈형 주방을 보자마자 나는 너무 감격스러웠더랬다. 리빙 잡지에서나 볼 수 있던 드림 키친이었으니까. 거기다 거실 한 면이 완전히 통창으로 되어 있어 조금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고개만 돌리면 바깥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에서 살지 못한 불만은 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쑥 들어갔다.
그렇지만 마냥 좋았던 첫 인상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내 집이 아닌 세입자라서 그런건지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방인이라 그런건지 집에 대한 애정은 급속도로 식어갔다. 마냥 커서 좋았던 통창은 열 수가 없어 한 여름에 더워진 집 온도를 낮추기 어려웠고, 집 안 창문이 맞창문이 없어 환기가 잘 안되어 습기가 많은 욕실 쪽은 곰팡이가 너무 많이 생겼다. 그리고 2층에 지붕 쪽에 창문이 만들어져 있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그 틈으로 물이 새서 원목 바닥이 물에 울어 울퉁불퉁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무가 무성한 가든은 4월부터 모기가 너무 많아져 가든 생활은 커녕 잠깐 집 밖으로 드나들 때조차 모기 떼들의 공격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사가고 싶다는 욕구가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와 둘째를 언제까지 같은 방을 사용하게 둘 수도 없었다. 남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살다보니 여기저기 불편한 지점이 생겼지만 우리 집이 아니다보니 마음대로 수리할 수도 없었고 주인이 처리해주지 않으면 불편함을 기약없이 감수하는 일이 종종 있을 수밖에 없었기 떄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사갈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제는 집을 사는 방향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이곳에서 산 지 7년 만에, 그렇게 우리의 새 거주지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