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OSONO Jun 27. 2023

밀라노에서 살고 있습니다.

밀라노에서 내 집 마련하기

 남편이 조만간 귀임발령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여기서 사업을 하고 싶단다. 본인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지금 무엇을 도전해보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나면 이도저도 못하는 시기가 될 것 같단다. 결정적으로 다니고 있는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단다. 한 달여의 고민 끝에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했다. 내가 끝까지 반대하면 당연히 계속 회사를 다니고 한국으로 귀임할 테지만, 남편이 지금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본인이 하고 싶은 일 해보는 것도 지금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해 11월 남편은 사직서를 내고 서울 우리 아파트를 매매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남편의 퇴직금과 서울 아파트 매매금으로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해 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나서 3개월 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굉장히 피해가 큰 국가 중에 하나였고 고령자 사망자가 너무 많아 국가 전체의 암운이 감돌았던 시기였다. 거의 1년 가까이를 바깥 활동이 금지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이랄까 남편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던 계약서를 철회하였고, 기존에 근무했던 회사에서 새 주재원을 발령내기가 어려워 남편이 계약직으로 당분간 업무를 지속했다. 그렇게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남편은 기존 회사와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새로운 본인의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더 이상 한 달에 2500유로의 렌트비를 감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이 아닌 외국인인 우리가 집을 살 수 있을까. 그리고 비용이 문제였다. 회사에서 복지로 혜택을 받았던 아이들의 학비며 렌트비를 우리 돈으로 충당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돈이 많지 않았다. 퇴직금과 매매금의 절반은 채권에 들어가 있었고 나머지 절반으로 그간의 생활비와 학비, 렌트비를 감당했다.

 결국 우리는 이사 갈 집을 알아봄과 동시에 은행 대출도 문의해 보기로 했다. 우선 집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부동산과 연락을 취했다. 우리의 집 구매 시 제1의 고려 요소는 학교와의 거리였다. 그리고 5 식구이기 때문에 방이 무조건 3개 이상이어야만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보다 더 멀리 떨어진 외곽은 제외했다. 이런 기준을 두고 집 탐방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2500씩 생돈이 월마다 나가는 게 너무 아까워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하고 싶었다. 당장 이사할 수 있는 집은 다섯 식구가 살기에 너무 협소하거나 터무니없이 너무 비쌌다. 가격이 적당한 집은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큰 애들 혼자 다니기가 어려웠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와 조건이 맞는 집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이미 지어진 집이 아닌, 짓고 있는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여러 부동산과 연락을 하고 매일같이 부동산 사이트를 드나든 결과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편의 이태리 사업파트너와 함께 건설사와 부동산 사업자를 만나기로 했다. 짓고 있는 아파트는 3동이었고 다행히 우리가 찾고 있는 방 세 개의 세대가 남아있었다. 학교에서의 거리도 적당하고 도보로 10분 거리에 지하철도 다니고 있어 큰 애들이 스스로 다닐 수도 있어 만족스러웠다. 자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입주시기와 비용이었다. 예상 입주는 2023년 6월. 애들 학기 중간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만큼 월 2500유로는 계속 빠져나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더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것도 지쳤고, 이 정도 조건의 집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비용은 한국에서 아파트 청약 시 납입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계약금, 중도금, 2차 중도금, 입주 시 잔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당연히 이 금액을 모두 우리의 버짓으로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은행 대출을 알아보았다. 외국인이라 대출을 받기 힘들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이태리에서 거주한 지 오래되었고 소득이나 세금납부에 있어서도 하자가 없어 대출이 가능했다.

 이태리에서도 모기지가 있어 본인의 소득 수준과 향후 미래가치를 파악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집을 구매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기지를 이용하는데 집 구매액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물론 대상자의 나이와 소득 수준, 신분에 따라 다르게 차등된다. 보통 미혼자의 경우 대출이 까다롭고 모기지 상환액이 소득 수준의 30% 미만이 되도록 설정되어 있다. 즉 집 구매 비용의 70%까지 대출이 가능하긴 하지만 월 상환액을 계산할 경우 소득의 30% 를 초과되는 모기지 대출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첫 구매의 경우 적용되는 이자와 두 번째 이상의 구매의 경우 이자율이 당연히 다르다. 36세 미만의 경우와 50세 이상의 경우도 이자율이 다르게 적용된다. 한 때 1%에 가까웠던 이자율은 현재 3~3.5%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다르게 대부분의 이탈리아인은 집을 사면 거의 이사를 가지 않는다. 즉 학군 때문에 이사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결혼한 이후 구매한 집에서 평생을 살다가 죽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다 보니 주택가격이 한국처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널뛰는 경우도 거의 없고 집을 통한 재테크도 없다고 볼 수 있겠다.


 결혼하고 청약을 통해 7년만에 서울에 마련했던 첫 아파트에서 겨우 2년밖에 살지 못했다.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그 집에서의 추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집을 판 돈이 종잣돈이 되어 이제 결혼한 지 16년 만에 내 집이 생긴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나는 남편이 밀라노로 다시 발령이 날 때에도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밀라노에서 집을 마련하고 여기에서 이렇게 자리잡고 살 거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긴 나는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내가 결혼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은 내가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새 집에서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이제 밀라노에서의 제2의 삶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보고 싶다.

한창 공사중인 우리 다섯 식구의 새 보금자리


매거진의 이전글 밀라노에서 살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