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토스카나
처음 피렌체를 갔을 때가 큰 애가 뱃속에 있던 2007년이니까 15년 전이다. 그 이후로도 한국에서 가족들이 왔을 때, 남편이 다시 밀라노로 발령받아 나왔을 때, 부활절 연휴나 아이들 여름방학 때 우리는 종종 이 지역으로 여행을 다녔다. 피렌체라고 부르든 플로렌스라고 부르든 어쩌면 이름도 이렇게 예쁜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하지만 이 곳은 소문대로 먹을 것 많은 예쁜 지역임에 분명하다.
토스카나하면 cattedrale santa maria del fiore 꽃의 대성당으로 유명한 피렌체가 떠오를테지만 이 지역은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지역이라고 불리는 만큼 다른 마을도 꽤 이름이 알려져있다. 기울어진 탑으로 유명한 피사, 와인과 음식으로 유명한 끼안티와 몬테풀챠노, 수도사들의 마을 아시시, 탑과 캄포광장으로 유명한 시에나 등등 소도시가 수없이 구릉 사이사이에 포진해있다. 실제로 이탈리아인에게 가장 이탈리아스러운 지역을 물으면 수도 로마의 라치오 지역이나 밀라노의 롬바르디아가 아닌 십중팔구 토스카나를 말한다. 토스카나 지역의 이태리어가 표준 이태리어이며, 메디치가에서 꽃피운 르네상스 문화 그리고 올리브와 포도가 가득한 구릉지대의 풍광. 이 모든 토스카나의 것이 바로 이탈리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런 토스카나의 곳곳에 남편과 나의 풋풋한 신혼시절부터 세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많은 발자국들이 찍혀있다. 같은 풍광 아래에 둘이 셋이되고 넷이되고 다섯이 된 사진을 보면서 그 순간과 찰나를 더듬어보곤 한다. 그래서 이 곳에서 여행기는 내 결혼생활 이야기같기도 하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찍은 피렌체는 2010년 때나 2018년 때나 별 다를 것 없다. 2010년 갓 돌 지난 둘째까지 데리고 나 혼자 밀라노로 돌아올 엄두가 나질 않았다. 22개월 터울밖에 나지 않는 1살 , 3살 짜리와 11시간 비행을 어떻게 감당하나싶었다. 결국 어머님과 시고모님께서 동행해주셔서 무사히 돌아왔더랬다. 그때 두 분과 같이 저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노을지는 피렌체를 바라보았지. 사실 그 당시에 나는 두 아이 챙기느라 피렌체의 풍광은 전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2018년 부활절 때 남편이 두번째 밀라노로 발령이 나고 우리는 피렌체를 다시 내려왔다. 2010년 당시 한창 청소중이었던 피렌체 두오모는 어느새 모든 청소를 마치고 반짝반짝한 얼굴을 온전히 다 드러냈다. 다시 찾은 피렌체는 많은 관광객으로 여전히 붐비지만 10년 사이에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린 아이 둘 보느라 풍광이 눈에 안들어왔는데 지금은 10년 전을 추억할 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만큼의 여유가 있는 삶이어서 다행이다 싶다.
그림보는걸 좋아하는데 로마 바티칸 미술관 사건 이후 아이들과 미술관을 가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꼭 보고싶었던 보티첼리의 <La primavera>를 2010년에는 애들이 너무어려 포기했었는데 18년도에 아이들과 같이 감상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발길돌렸던 10년 전의 내 아쉬움이 떠오른다.
인연은 사람 사이에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마을이나 도시와 사람 사이에도 만들어진다. 이렇게 돌아와 다시 볼 수 있어 피렌체와 나 사이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