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OSONO Aug 09. 2023

사춘기 남자아이의 우정

- 엄마! 학교 빨리 가고싶어요

 저녁을 먹다말고  애가 싱글싱글 웃더니,

"엄마 Dhruv랑 통화했는데 제가 보고 싶대요. 크리켓 같이 할 때가 좋았다고 방학 빨리 끝나면 좋겠대요"

 숟가락 내려놓고 아들 얼굴을 빤히 보니 정말 기분이 좋긴 좋은가 보다. 그러면서 계속 말을 이어가기를,

"그래서 저도 보고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좀 안심이 되더라구요. 나는 나만 친구들 보고싶어하는건가 싶었거든요. 근데 Dhruv가 같이 크리켓 치고 싶다고 말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한국으로 치면 고 1인데, 안경너머 작은 눈이 더 작아지게 눈웃음지으며 종알종알거린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친구가 저 보고 싶다고 말 한마디에 저리 기분 좋을 일인가 싱겁기 짝이 없다.

“ 학교 다닐 때 시험이랑 숙제 때문에 힘들어서 방학하면 좋겠다고 했잖아. 근데 지금은 친구들 보고 싶어서 방학 빨리 지나가면 좋겠어? 어때?”


“네. 시험이 싫긴한데 친구들은 너무 보고싶어서 빨리 방학 끝나면 좋겠어요”

흠. 그래 어떤 애들은 학교 가기 싫어서 땡땡이도 치고 조퇴도 한다는데, 얼른 친구들보러 학교가고 싶다니 이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겠다.


 저 나이 때 나를 더듬어 떠올려본다. 그러니까 25~6년 전, 17살의 나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학교를 가고싶다라는 마음은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 같다. 요즘 한국의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처럼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에도 고등학생은 의레, 방학이 무슨 말이냐. 하루 종일, 방학내내 학교에 나가야만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당연히 같은 반 친구들은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물론 그 당시의 나도 친구들과 놀면 즐거웠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동질감도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아들에게서 느껴지는 그저 순수한 우.정. 자체의 감정이 과연 나에게 있었을까 싶다. 어떤 비밀을 공유해서라든지, 상대방에게 뭘 원하는 게 있어서라든지, 누가 공부를 잘 해서라든지 등 이런저런 목적이나 동기가 전혀 없는 그냥 순수한 감정. 사람이 사람을 그냥 좋아하는 것 말이다. 사춘기의 나는 대입이라는 목표를 향한 같은 그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공부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인가를 같이 하면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일까 . 이렇게 밀라노로 나와 살면서부터는 연락이 닿는 사춘기 시절의 친구들이 거의 없다.

 공부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것을 같이 해 볼 생각도 못했던,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아이에게서 들여다 보게 된다. 두어시간씩 걸으면서 온갖 얘기를 하고-때로는 숙제나 시험공부이기도 하다- 크리켓이나 달리기를 하고 방학동안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고 답한다.

 이런게 진짜 저 나이의 우정이구나. 코 밑이 거뭇거뭇하고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하는 울퉁불퉁한 얼굴의 사춘기 아이들이지만, 그냥 네가 보고싶다고 말하는 순수함이 참 부럽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