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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Aug 22. 2023

너는 내 운명

아홉살 막둥이

 얼마 전 둘째 수영복을 사러 쇼핑몰에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쇼핑몰에 갔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몸에 너무 헐렁하고, 사이즈가 맞으면 디자인이 유치하다며 여러 벌을 입고 벗었다를 반복하는 딸을 보고 있자니 너무 힘들어서,


“ 처음 입었던 꽃무늬 수영복입어. 엄마가 보기엔 하나도 안 유치하고 잘 어울리는구만”

 둘째는 내 말에 대꾸하는 대신  빠른 눈스캔으로 매대에서 수영복을 다시 가져가 갈아입는다.


“ 아이고 수영복 하나 사기 힘들다 그치?”

지루한 표정으로 내 옆에 서 있는 막내에게 말을 건네본다. 기다리는데 지쳐 짜증이라도 낼까봐 미리 선수쳐서 농담조로 말했는데 막내의 대답은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 엄마, 그 수영복은 누나 스타일이 아니래잖아요. 누나가 입고 싶은 거 입어야죠. 엄마가 입는 거 아니고 누나가 입을건데 엄마가 강요하면 안되죠. 누나 스타일을 존중해줘야해요.”


………

 마냥 기다리는건 본인도 따분하기 매 한가지지만, 그래도 아무거나 대충 사이즈 맞는 거 입으라는 엄마의 말은 아홉살짜리가 듣기에도 억지이고 강압이었나보다. 누나 스타일을 존.중. 해주라고 쓴소리를 하는 걸 보니.



 큰 애와 일곱 살 터울, 둘째와 다섯 살 터울인 막내는 생각지도 않게 나에게 왔다. 바르셀로나 해외살이 마지막 해에 드디어 두 애 모두 학교에 보내고 자유부인이 되었는데 그때 덜컥 생겼다. 그저 생리불순으로만 생각했던 찰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본 임신테스터기에 두 줄을 보고는 어찌나 당황했던지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하나 더 사서 테스트를 해 보았다.


오 마이 갓…어김없이 두 줄이었다.


 막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때에는 이제 겨우 살만한데 다시 육아를 시작해야 한다니 눈 앞이 캄캄했다. 나는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변했다.


 ‘ 이 나이에 낳아도 괜찮을까’

 ‘며칠 전에 두통약 먹었는데 어쩌지?’

 나는 계속 낳지말아야하는 이유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미 노산에 들어선 나이였고 이제 한국에 돌아가는데 다시 시작하는 육아때문에 영영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나에게 아이 셋은 뭔가 운명같았다. 다시 시작해야하는 신생아 육아가 걱정스럽긴 했지만, 이 아이는 내가 무지해서 저질렀던 실수로 점철된 첫째, 둘째 아이의 육아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았다. 준비도 안되어 멋모르고 닥치는대로 했던 육아말고 성숙하고 준비된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랬다. 그래서 몸은 좀 힘들겠지만, 마음이 편한 길을 선택했다.


 워낙 바쁜 남편이라 병원에 첫 진료를 받으러 가서 초음파를 볼 때에도, 마지막 진료를 볼 때에도 혼자 서 뱃 속 아이를 만났다. 이미 여러번 경험해 본 초음파였지만 셋째를 처음 초음파를 통해 만났을 때에는 뭉클함과 미안함이 뒤섞였더랬다. 잠깐이었지만, 낳을지 말지 고민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낳을 때에도 남편은 업무인수인계 때문에 우리와 같이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아이 둘과 만삭의 몸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몸 풀 병원을 알아보고, 남편없이 셋째를 낳았다. -남편은 아이가 백일이 될 때가 되서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셋째에게 끈끈한 전우애같은 감정이 있다. 나는 남편도 없이 홀로 너를 낳느라,너는 반겨주는 아빠없이 세상밖으로 나오느라 오롯이 우리 둘이서 겪은 그 시간 때문일 것이다.



 막내는 우려와 달리 굉장히 순했고 수월하게 잘 크고있다. 모든 아이들이 한번씩 겪는 영아산통도 없이, 잠투정도 없이, 마의 이유식 구간도 무던하게 잘 넘기며 무럭무럭 무탈하게 잘 컸다. 육아스트레스는 커녕 한 해 한 해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아 아쉬울 지경이다.

 셋을 어떻게 키우냐며 걱정하던 어른들에게 걱정마시라며 키울  있다고 뻥뻥 큰소리 쳤지만 사실 나와 남편은 아이 셋을 우리가 과연  키울  있을까 매일이 불안했다. 지금 뒤돌아보면 우리가  아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아이가 우리를 부모로 성장시켜준  같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번  해외살이에 도전할수 밖에 없었고, 여기에서 자리잡고 살게끔  아이는 우리의 동력이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 모두 부모라고 불리지만 제대로  부모가 되는 것은 어렵다. 나는 셋째를 키우면서 비로소  부모를 이해할  있게 되었고 타인의 삶과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어른으로 성장시켜준 막내는  운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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