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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Sep 19. 2023

극단적인 날씨

이상기후는 더이상 남얘기가 아니다.

 저녁을 준비하려고 쇼파에서 일어나는 순간, 밖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눈깜빡할 사이에 우박이 마구 쏟아진다. 바람도 사방팔방에서 세차게 불고 닫힌 창문을 뚫고 들리는 빗소리가 심상치않다. 때마침 남편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데, 앞이 보이지않는 폭우라 남편이 차마 차에서 내리질 못한다. 도통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큰 우산 두 개를 펴들고 남편 차로 가서 남편에게 우산을 하나 넘겨주고 얼른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 몇 분 사이에 바지가 흠뻑 젖었다.


 “ 엄마!! 계단이랑 천정에서 물이 마구 쏟아져요!!”

  거실 식탁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건 막내가 다급하게 나에게 소리친다. 그제서야 내 귀에 들이는 물소리가 밖에서 내리치는 빗소리가 아님을 알아챘다.

우두두두두……

 낙수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나도 모르게 2층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역시 이 소리가 1층 거실 천정 높이에서 들릴 소리가 아니다. 2층 천정에서 계단으로 물이 얼마나 많이 흐르던지 계단이 흥건하다.

 “ 하 이거야 원..”

한숨이 단전에서 올라온다. 부랴부랴 걸레며 수건이며 몽땅 가지고 나와 젖은 바닥에 깔고 대야며 빨래바구니며 떨어지는 물을 받쳐낼 만한 것들을 다 꺼내 비가 새는 곳마다 가져둔다.

 지난 여름 돌발성 폭우로 이런 일을 한번 겪었답시고 이번에는 제법 빠르고 침착하게 대처했다. 맹렬하게 퍼붓던 비가 삼십여분이 지나자 잠잠해진다. 덕분에 우리집 거실로 새던 비도 점점 줄어든다. 한 시간 정도 더 지나자 바람도 안불고 비도 그친 모양새다. 오늘같은 돌발성 폭우가 지난 여름 크로아티아 여행 당일 날 새벽에 똑같이 일어났었다. 하늘이라도 무너지나 싶을 정도의 굉음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 천정에서 식탁 쪽으로 비가 줄줄줄 새고 있었다. 자다말고 흥건한 바닥을 닦아내느라 혼이 쏙 빠졌었다.

 한 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던 탓에 밀라노 전역에 물이 넘쳐 도로가 마비되고 가로수가 뽑히는 등 도심이 엉망이 되었다. 두달이 채 안되어 오늘 그 때와 비슷한 폭우가 내렸다. 이런 폭우는 내가 밀라노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겪는다.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해보니 밀라노 이곳저곳이 물폭탄이다. 도로침수는 당연하고 이곳저곳에 부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막고, 지하철 역사 내에도 물이 차올랐나 보다.


 남극 얼음이 녹고 호주와 캐나다에서 산불이 몇달째 꺼지지 않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 같았다. 남극이 어디쯤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 전혀 갈 것 같지 않은 호주와 캐나다이다. 밀라노에서 살고 있으니 기껏해야 롬바르디아 주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나 관심이 갔다. 짐작해보면 대부분의 인간은 나같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몇 십년전부터 예견된 이런 이상기후의 여파를 직면하고 있는거겠지.

 내 생활의 반경에 그 여파가 미치지 않으면 심각성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어제의 그 난리를 겪으니 이제 나는 이상기후가 내 일상을 얼마나 흔들어놓을 수 있는건지 알게 되었다. 당장 뚝뚝 떨어지는 물때문에 마룻바닥이며 천정이 뒤틀려졌다. 대충 닦아놓았지만 이틀 뒤 비 예보가 있는데 그때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뉴스 속에서 들리는 기후위기는 어쩌면 이미 위기 단계를 지났을 수도 있겠다. 멀쩡했던  지붕이 한번에 비가 줄줄줄 새는 것처럼 그동안 멀쩡해보였던  지구가 지금보다  심각한 재난이 한꺼번에 터질수도 있겠다. 다음 세대에 이런 문제들을 전가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다음 세대가 아닌 불과 몇 년안에 이 지구는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불과 한 시간동안 내리친 비바람의 잔해가 하루 지난 지금까지 내 집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이 상황을 보면, 이상기후의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 이상을 초래할 수 있겠다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 비가 샌 우리 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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